오솔길 의자에서

뭉클한 이야기 37

채우미 2025. 4. 22. 11:02

 

 

1944 루마니아가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 안으로 흡수된 , 공산당은 모든 분야를 장악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일환으로 1945 루마니아 정부는 국회의사당 건물에 전국의 각종 종교 지도자들 4,000여명을 끌어 모았습니다. 그리곤 그들 앞에서 스탈린 동지가 이번 종교 회의의 지원자라고 선언했고, 말에 그곳에 모인 종교 지도자들은 우뢰와 같은 박수 갈채를 보냈습니다. 그들은 공산주의가 유물사상을 기초로 하고 있으며 종교를 부정한다는 사실을 너무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회의장을 누르고 있는 억압적이고 전체주의적인 분위기를 이길 없었던 겁니다. 당시의 수상 그로자가 단상에 서서 자신은 신부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앞으로 종교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하자 우뢰와 같은 박수가 터져나왔습니다. 그후 종교를 대표하는 지도자들이 사람씩 단상에 나가 기꺼이 공산당에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습니다. 중에는 정교회 감독, 캘빈 목사, 루터파 목사, 랍비 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4,000여명 가운데 리차드 범브란트 목사와 그의 아내도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범브란트의 아내는 종교지도자들이 하나님을 무시하는 공산당 간부들 앞에서 아부하고 있는 모습을 보다가 견디지 못하고 곁에 있는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일어나서 예수님의 얼굴에 잔뜩 칠해놓은 수치를 씻어내세요.”

범브란트는 속삭이듯이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당신은 남편을 잃게 될거요.” 하지만 아내는 강하게 말했습니다. “ 그런 겁장이 남편은 필요없어요. 그러니 일어나 말하세요.”

 

세계선교협의의 대표 자격으로 발언권을 얻은 범브란트는 단상으로 나갔습니다. 마이크 앞에서 그는  담대하게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공산주의를 비판했고, 교회의 지도자들은 결코 세상 권력에 굴해서는 안되며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선포했습니다. 물론 그의 연설은 그리 길지 못했습니다. 당황한 공산당원들이 급히 마이크를 끄고 그를 단상에서 끌어 내렸기 때문입니다.

 

사건 , 범브란트는 곧바로 공산당원들에 잡혀 가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범브란트 목사를 통해 배후 인물과 협력자를 알아내려고 온갖 끔찍한 고문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몸을 꺼꾸로 매달아 놓고 발바닥을 때려댔습니다. 발바닥에 폭탄이 터지는 것같이 아팠습니다. 칼을 세워놓고 사람이 목사를 양쪽에서 붙잡고 끝으로 밀어내는 고문도 가했습니다. 칼끝이 속으로 들어오는 통증에 기절했다가 눈을 떠보니 온몸이 피로 흥건히 젖어 있었습니다. 호수를 입에 넣고 물을 뿜어대는 물고문도 했습니다. 당장이라도 터질 것같은 배를 발로 눌러댔습니다. 그냥 죽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들의 고문은 죽음 직전에 멈췄습니다. 죽지 않도록 의사를 곁에 두고 고문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극심한 고문에도 불구하고 아무 소득이 없자, 그를 감옥으로 보내고 말았습니다. 감옥에서의 생활도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부족한 음식과 심한 노역, 그리고 주님을 포기하라고 가해지는 고문 때문에 육신은 고통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속에서도 범브란트는 하나님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런 범브란트를 하나님께서도 놓지 않으셨습니다.

 

시간을 정해놓고 꾸준히 기도했는데,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또렷한 음성을 들려주시는지, 주파수가 맞춰진 라디오를 듣고 있는 같을 정도였습니다. 또렷한 하나님의 음성은 하루를 시작할 있는 힘이 되주었습니다. 혹독한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오면 잠들기 간수가 들을 없는 조용한 목소리로 설교를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설교를 듣고 있는 하나님, 예수님, 하늘 나라의 천사들, 이미 천국에 있는 성도들, 지금은 바깥에 있지만 교회를 함께 섬기던 성도들, 그리고 가족들을 생생하게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의 영혼은 기쁨과 감동으로 벅차올라 지금 감옥에 있다는 것도 까맣게 잊고 말았습니다. 언제부턴가는 기쁨을 주체할 없어 혼자 덩실덩실 춤추기 시작했습니다. 출애굽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춤추던 심경을 이해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법궤가 성으로 올라올 옷이 벗겨져라 춤추던 다윗의 심정을 이해할 있었습니다. 감옥까지 찾아와 함께 하시는 주님의 사랑과 은혜 때문에 그의 영혼은 풍성했습니다.

 

주님께선 가끔씩 육신적인 위로도 주셨습니다.

번은 그가 춤추고 있을 , 앞을 순찰하던 간수가 광경을 보고 말았습니다. 감옥에서의 삶이 춤출 환경이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나 아는 간수는 그가 미쳤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곤 불쌍한 사람에게 선심쓴다는 마음으로 자기에게 배당된 음식을 풍성히 가져다 주는 에피소드가 일어난 겁니다. 물론 그가 미치지 않은 것을 알고나서 번에 그치고 말았지만, 그날 범브란트는 하나님께서 주신 진수성찬을 배가 터지도록 즐길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붙잡혀온 죄수 사람이 가족 소식을 전해준 겁니다. 아내도 신앙 때문에 잡혀 심한 옥살이를 겪다가 고문 때문에 중태에 빠졌다는 겁니다.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거지처럼 거리를 헤매며 살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눈물로 기도하는 그에게 하나님께선 아들을 보내주셨습니다. 면회가 불가능한 때에 면회의 길을 열어주신 겁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우리 모두는 괜찮습니다. 어머니도 많이 회복되셨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부자이십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들과의 면회는 석방될 때까지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신비한 방법으로 그의 염려를 깨끗이 몰아내주셨던 겁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선 그의 건강도 붙들어주셨습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그는 결국 폐결핵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를 진단한 의사는 그가 2 후에는 죽을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폐는 체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있었고, 결핵균이 척추에까지 침투했던 겁니다. 하지만 의사의 말대로라면 죽어야할 2주가 지났지만 그는 멀쩡히 살았고, 4년후 특사로 석방될 때까지 그는 생존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셨던 겁니다. 아멘?

 

8 동안의 감옥 생활을 마치고 돌아왔을 그는 식구들과 친지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불행에서 행복으로 옮겨왔다고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감옥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즐거움을 누리다가 이젠 가정에서 그분과 함께 하는 즐거움을 누리러 뿐입니다.”

 

아들 미하이가 아버지, 아버지는 감옥에서 고통을 겪으셨는데, 고통 속에서 무얼 배워셨는지 듣고 싶습니다라고 묻자, 질문이 기특해서 아들을 끌어안고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세주시라는 , 영원한 삶이 있다는 , 마지막으로 사랑이 최선의 길이라는 것을 배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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