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직 목사님과 함께 월드 비전을 창설한 밥 피어스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1950년 12월 대구에 머물고 있던 피어스 목사님은 살을 에이는 것과 같은 바람을 맞으며 한 교회의 새벽 기도회에 참석했습니다. 새벽 기도회를 통해 한국 교회가 전쟁이라는 이 어려움 속에서 어떤 역할을 감당해가고 있는지를 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추운 새벽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와 있었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이 모여와서 예배당 밖에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공포와 불안과 피로감으로 가득했습니다.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당시 대구에는 100만이 넘는 피난민들이 몰려와 있었고, 대구에 사는 사람들도 언제 피난짐을 싸야할지 모르는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되어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찬송을 부르며 눈물을 흘리는 성도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슬픔의 찬송이 아니었습니다. 피어스 목사님의 귀에 들려온 찬송은 분명히 기쁨과 감사의 찬송이었습니다. 이 어려움 속에서도 목자가 되시어 자신과 교회를 보호하고 이끄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송이 분명했습니다.
설교시간이 되자 목사님이 설교전에 특별 헌금을 드리겠다고 광고하셨습니다. 피어스 목사님은 순간 이해가 가질 않았습니다. 자신의 눈에 비친 성도들의 모습은 누구에게 도움을 주기 보다는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로만 보였기 때문입니다. 교회 담임 목사님은 계속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드리는 헌금은 도시에 몰려든 피난민을 위한 것입니다. 그들은 이곳까지 피해오면서 찢어진 옷 한 벌 달랑 입고 온 사람들입니다. 추위에 떨고 있는 피난민들을 우리가 도와 주어야 합니다. 이 아침엔 옷을 헌금으로 드리도록 합시다.”
목사님의 말씀이 끝나자마자 주위에서 옷을 벗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피어스 목사님 곁에 있던 피골이 상접한 청년은 자기 자킷 안에 입은 조끼를 벗어 드렸습니다. 한 어머니는 안고 있는 아기에게서 스웨터를 벗겼습니다. 그리곤 추위에 몸을 옹송거리는 아기를 자기 품에 꼭 안고는 단 앞으로 걸어나가 그 스웨터를 내려놓았습니다. 순식간에 그렇게 드려진 옷들이 단에 앞에 수북히 쌓였습니다.
피어스 목사님은 그 광경을 보면서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피어스 목사님은 이 광경을 생각하고 간증할 때마다 ‘이세상에서 가장 희생적인 헌금(The most sacrificial offering in the world)’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이 때 한국 교회는 영적으로 강했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왕성하게 성장하고 부흥했습니다. 전쟁이 끝난직 후부터 60년대말까지 한국 교회는 양적으로 매년 40%가 넘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습니다. 바로 교회와 성도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세상을 향해 아름다운 사랑의 빛을 강하게 뿜어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빛을 따라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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