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행전 26장은 총독 베스도가 아그립바의 도움으로 바울의 죄목을 정하기 위해 연 청문회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청문회장을 복음 증거의 도구로 사용합니다. 이런 용기는 어디서 나온 걸까요? 19절 중 “하늘에서 보이신 것”이라는 표현에 답이 있습니다.
이 표현이 담고 있는 용기의 첫번째 출처는 예수님과의 신비한 만남입니다. 그때 바울은 태양보다 더 밝은 빛으로 임하신 예수님을 만났고, 또한 예수님과 직접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 특별한 체험이 용기의 첫번째 출처인 겁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직간접으로 체험한 성도들은 담대한 용기를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체험하셨나요?’ 하고 물으면, 많은 분들이 주저주저합니다. 하나님 체험하면, 바울의 체험과 같은 기적 또는 기적에 버금 가는 사건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난 후 삶에 크고 작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면, 성령 하나님을 체험하고 있는 겁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문제가 생겼을 때 하나님 앞에 나가 기도한다면,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걸 진심으로 기뻐한다면, 하나님 말씀 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일상을 대하는 태도와 삶의 목적이 바뀌었다면, 이렇게 주님 믿기 전에는 전혀 생각지도 않던 일들을 경험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분명히 성령님을 체험하고 있는 겁니다. 이런 변화들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삶에 임하신 성령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변화를 체험하고 있는 성도들은 바울처럼 용기를 낼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항상 나와 함께 하고 계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앙의 용기를 잃지 않는 주님의 용사들이 다 되길 바랍니다.
하지만 하나님 체험만으로는 온전한 용기를 가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신 장면을 직접 체험하고도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불평하고 절망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좋은 본보기입니다. 하지만 백성들을 이끈 모세는 달랐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우리는 “하늘에서 보이신 것”이라는 표현 속에서 용기의 또 다른 출처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건 바로 하늘에 계신 주님께서 바울에게 들려주신 소명입니다. 주님께서 바울에게 주신 소명은 유대인과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고백하고 있듯이, 바울은 주님께서 주신 이 소명을 어떤 상황에서도 거스를 수 없었던 겁니다. 이 철저한 소명 의식이 바울의 용기를 설명해주는 두번째 근거인 겁니다. 다른 예를 들어볼까요?
느헤미야는 바사 왕국 때 아닥사스다 왕의 술 맡은 관원장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유다에서 온 형제들로부터 예루살렘 성의 처참한 소식을 듣게 됩니다. 100여년전 바벨론 침략 때 무너지고 불에 탄 성벽과 문이 지금까지도 그 상태 그대로라는 겁니다. 느헤미야는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자신이 왕의 은혜를 입어 성벽을 재건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소명으로 믿은 겁니다. 어느 날 왕이 느헤미야의 얼굴에 가득한 수심을 보고 무슨 걱정이 있느냐고 묻습니다. 왕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는 사실 때문에 두려웠지만, 느헤미야는 용기를 내서 자신의 걱정거리를 솔직히 고백합니다. 그러자 왕은 무엇을 도와줄까 하고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셨다는 걸 깨달은 느헤미야는 더 큰 용기를 내 예루살렘 성벽을 짓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을 간청합니다. 철저한 소명 의식이 이처럼 큰 용기를 낳은 겁니다.
투철한 소명 의식은 그 소명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그 믿음 때문에 바울과 모세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담대하게 소명을 감당해낸 겁니다.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용기를 낸 모세와 바울을 도우셨다는 겁니다.
우리도 각각 은사에 따라 소명을 받은 자들입니다. 주신 소명을 이룰 때까지 용기를 내고 물러서지 맙시다. 하나님께서 그 용기를 사용하셔서 뜻을 이루시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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