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20년 전 평신도로 작은 규모의 교회를 섬기던 때
'가을 축제'를 기획한 적이 있습니다.
찬양과 시를 씨줄 날줄 삼아 그분께 영광을 드리던 그 밤
저도 한 부분을 맡아야 했습니다.
그때 쓴 시가 지하실로 내려가는 벽에 걸려 있어 이곳에 옮겨 봅니다.
새벽 그리고 영혼
새벽의 찬 공기를 마시며 문을 나설 때
내 의식은 반쯤 잠에서 깨어난다
서늘한 바람에 새소리 묻어오면
주위 나무들을 휘- 둘러보며
남은 반쪽의 의식도 되찾는다
물론 온 몸에 먼지처럼 붙은 잠의 그림자를
터럭까지 다 털어버릴 수는 없지만...
새벽 미명과 함께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의식은 이렇게 버릇처럼 되살아나곤 한다
새벽은 이방의 냄새가 덜 풍긴다
태어난 땅과는 다른 모습의 주위 사물들도
그저 그들이 갖고 있는 공통의 의미로 다가서고
내 오관 또한 새벽이 뿜어대는 신비한 체취에 취해
잠시 이방의 나라에 있음을 잊는다
이방인의 신분은 괴롭고 불편하다
집 떠나 군에 입대한 첫 날
차가운 침상에서 느끼던 그 외로움이
오히려 태양이 떠 있는 동안
날카로운 의식 사이를 짙은 향처럼 비집고 든다
피조물 인간이 갖는 한계런가
보이는 것들에 지배 당하기 쉬운 속성과
매일 처절히 다투어야 하는 약한 영혼은
지성을 핑계삼고 일을 변명하며
만지고 보고 느끼는 세상 속으로
하염없이 추락한다
문득 육중한 죄의 무게로
가위에 눌린 듯 깨어나
다시 주님의 품으로 회귀하는 반복의 굴레
그래도 매번 용서받는 탕자가 될 수 있음은
주님의 사랑...
작지만 살아있는 불빛을 가슴에 보듬고
험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의 흔적이 있는
천성을 향한 좁은 길을 바울처럼 당당히 걸어갈 순 없는걸까
이윽고 멀리 새벽 기운에 싸인 교회 첨탑이 보이고
마당 한 쪽을 가득 채우고 선 월계수 아랠 지나
교회의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면
품에 안긴듯 따뜻해지는 영혼
예배가 시작되고
싸늘한 성전 바닥에서
찬송과 기도에 침잠하며 그분 음성에 귀 기울인다
어느새 스며든 아침 햇살에
예배당의 십자가가 황금빛으로 물드는 시간까지
새벽은 부활의 시간이다
이른 새벽 주님의 무덤을 찾아
예수를 만난 막달라 마리아처럼
새벽이 맟도록 물고기를 쫓다가
부활의 예수를 만난 베드로같이
새벽은 새로운 영혼을 잉태하는 부활의 시간이다
1994년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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