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는 바하가 작곡한 ‘마태의 수난곡’을 소재로 삼아 예수님 수난의 의미를 묵상했는데, 올해는 헨델이 작곡한 ‘메시아’를 소재로 삼아 고난 주간을 보내려고 합니다.
16세기 종교 개혁을 통해서, 교회는 카톨릭이 성경 독점을 통해 오랫동안 행사해온 영적 폭압에서 벗어납니다. 그런데 100년쯤 후부터, 교회는 새로운 적을 만나게 됩니다. 17세기 중반에 시작되어서, 18세기에 들어와서 유럽 전체를 사로잡은 계몽주의 입니다. 급격히 발달한 과학과 기술을 도구로 삼아 이성과 사실을 중시하는 계몽주의는 교회 안까지 침투해서 신앙의 기초를 흔들어 댔습니다. 결국 계몽주의는 이단들을 만들어냈는데, 18세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이단은 Deism이었습니다. Deism을 간략하게 설명하면, 하나님은 인정하면서도, 하나님께서 인간 세상에 개입하시는 걸 부정하는 이단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고 믿는 겁니다. 그 결과, 기적을 부정하고, 더 나아가서 예수님도 부정합니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과 공생애 중 행하신 표적들, 그리고 부활을 부정하니, Deism에는 예수님이 서실 자리가 없는 겁니다. 요한일서 4장에서 예수님을 잘못 증거하거나 부정하는 자들을 이단이라고 하셨는데, 아주 무서운 이단이 유럽을 공격한 겁니다.
이때 이 이단에 도전한 인물 중 한 사람이 ‘메시아’를 작사한 찰스 제넨스입니다. 찰스는 신실한 크리스천이었습니다. 그는 엄청난 부를 지금으로 치면 조 단위의 재산을 물려받은 귀족이었지만,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드리기 위해 독신으로 지낼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찰스는 교회 안으로 디이즘이 침투하는 걸 도저히 주고 볼 수 없었던 겁니다. 이런 이단을 퇴치할 가장 강력한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밖에 없다고 굳게 확신한 그는, 예수님을 증거하는 성경 말씀들을 한 데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모은 말씀을 예수님 탄생에 대한 예언과 실현,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순으로 정리한 후 ‘메시아’라는 제목을 붙여서, 평소에 자신이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헨델에게 보냅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말씀을 전하는 방법은 음악이 최고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기독교의 중요한 절기 때마다 온 세상에 울려 퍼지는 ‘메시아’가 탄생했습니다.
이번 고난 주간 새벽 예배에는 ‘메시아’ 중, 1부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예언과 실현, 2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이루고 있는 말씀들 중에서 선택한 구절들을 함께 묵상하려고 합니다.
메시아는 오늘 함께 읽은 본문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실 텐데, 그렇게 하시는 이유 중 하나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을 위로하기 위해서라고 분명히 선포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니, 하나님의 위로 PROJERCT는 그야말로 엄청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위로 받을 수밖에 없는 그런 PROJECT입니다. PROJECT의 내용을 하나하나 살펴볼까요?
먼저 2절 말씀을 통해 죄를 용서해주실 거라고 약속하십니다. 아담이 지은 죄로 인해 낙원을 잃어버리고, 사망의 고통 가운데 사는 자들에게는 그야말로 엄청난 희소식입니다. 죄 때문에 겪는 고통은 사망 뿐이 아닙니다. 죄 때문에 낙원에서 추방당한 후, 인류는 진리를 찾지 못해 우왕좌왕 하며 살아가야 했고, 세상의 무엇으로 채워도 채워지지 않고 그래서 만족할 수 없는 불행한 삶을 살다가 죽음을 맞아야 했습니다. 이 모든 고통의 원인이 바로 ‘죄’ 인데,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해주시겠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보다 더 위로를 주는 좋은 소식이 어디 있겠어요.
3절에서는 하나님의 대로를 열어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죄가 낳은 무서운 결과 중 가장 무서운 결과는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살던 낙원이 낙원인 이유는 하나님과 사랑의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담이 죄를 범하자, 하나님께선 그들을 추방하고, 에덴의 입구를 막아버리신 겁니다. 그후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하셔서 성막과 성전을 통해 그들을 만나주셨지만, 그 만남은 대제사장을 통해야만 하는 아주 제한적인 만남이었습니다. 대제사장 조차도 일년에 딱 한 번 법궤가 있는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선 차원이 다른 계획을 세워 실행하겠다고 약속하신 겁니다. 그 PROJECT가 이루어지면, 택함 받은 백성들과 하나님 사이에 대로가 열려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할 수 있게 될 거라는 겁니다. 그러니 그날을 소망하며 눈물을 닦고 웃으라시는 겁니다.
4절에서는 이 위로를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 세상은 불평등으로 가득합니다. 산처럼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누리는 사람들, 골짜기 같이 낮은 자리에서 고통으로 신음하는 사람들이 섞여 살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위로 PROJECT는 모두가 똑같이 누리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고 계신 겁니다. 주님께서도 포도원 일군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이 약속을 확인해 주셨습니다. 아침 일찍 주인에게 택함 받아 포도원에서 일한 사람도, 저녁 무렵 택함 받아 일한 사람이나 다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받은 겁니다. 한 데나리온은 구원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위로 PROJECT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은, 종이나 자유자나 여자나 남자나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다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겁니다. 불평등이 고질병으로 자리잡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위로 PROJECT는 그야말로 큰 위로가 되는 겁니다.
5절에서는 이 위로 PROJECT를 어떻게 이루실 지, 그 방법과 때를 알려주십니다.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는 날, 그 영광을 통해 이루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의 하나님의 영광은 바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 말씀이 이 진리를 뚜렷하게 증거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우리 주 예수님은 본문 말씀대로 하나님의 위로 PROJECT를 완성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서 화목제물로 죽으시고 장사된 지 3일만에 자시 살아나심으로 위로 PROJECT를 완성하신 겁니다.
우리 두란노 식구들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위로를 다 받았고 누리고 있다는 걸 믿으시기 바랍니다. 죄에서 해방되어 혼돈과 공허와 사망의 고통에서 벗어났다는 걸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특권을 갖고 있다는 걸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주님 안에서 평등하게 사랑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는 걸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제는 세상에 나가 죄의 그늘 속에서 신음하고 살아가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위로 PROJECT를 알리고 전하는 위로자가 다 되길 축원합니다.
'예수커리커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웃는 자들 (0) | 2024.03.27 |
---|---|
임마누엘 (2) | 2024.03.27 |
하나님께 영광되는 삶이 되려면 (0) | 2024.03.24 |
교회를 위해 기도하라 고난을 기뻐하라 (2) | 2024.03.13 |
교회를 품에 안고 계신 하나님 (0) | 2024.03.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