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9년 4월 15일, 독일의 라이프찌히에 있는 토마스 교회는 오후 1시15분 성금요일 예배를 알리는 종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성도들이 다 모이자 1시 45분 바흐가 작곡한 오라토리오 “마태의 수난곡” 첫 곡 합창이 교회 안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오라 함께 슬퍼하자. 보라! 어린양을, 보라 오! 주님을 보라! 오 하나님의 어린양 십자가를 지셨도다. 보라 자비하심을 보라! 한없는 사랑으로 우리 죄를 대신 지셨네. 보라! 우리 위해, 죄 많은 우리를 위해. 구원을 내리셨네 보라! 우리를 위해
보라 사랑의 주님을, 주는 십자가 지셨네 보라! 주는 몸소 십자가 지셨네. 자비를 베푸소서. 오 예수 나의 주여! 오라 함께 슬퍼하자 오! 주님을 보라 하나님이 주신 어린양. 오라! 함께 슬퍼하자 아! 어리신 양"
예수님께서 수난을 예고하신 후 잡혀 가시기까지의 내용을 담은 1부 연주가 끝나자, 토마스 교회의 담임 목사 Christian Weiss가 말씀을 전했고, 그후 2부, 제사장 가야바 뜰에서의 심문에서부터 주님의 매장까지를 내용으로 한 후반부가 연주됩니다. 바흐 음악의 깊은 영성에 푹 빠졌던 위대한 선교사 슈바이처가 ‘제 5의 복음서’라고 극찬한 마태의 수난곡은 이렇게 세상에 처음 알려지게 됩니다.
올해 고난주간 새벽예배와 성금요일에는 바흐가 마태의 수난곡을 작곡할 때 사용한 마태복음 26장과 27장의 말씀을, 수난곡의 흐름에 따라 묵상하면서 은혜를 누리고자 합니다. 수난곡은 총 78개의 곡으로 이뤄져 있는데, 7개의 주제로 묶어보았습니다. 오늘은 그 첫번째 주제인 ‘수난의 예고’ 부분을 함께 묵상하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오늘 말씀에서 두 번이나 당신의 죽음에 대해 언급하십니다.
2절 말씀을 보니, 유월절에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해 팔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다는 말씀은, 당시 로마 제국이 정한 최고의 극형을 당해 죽임을 당하실 거라는 뜻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겁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예수님은 그런 극형을 당할 만한 죄를 짓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끔찍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하시는 주님의 태도 때문에, 제자들은 주님 말씀을 심각하게 듣지 않았을 겁니다.
6절부터 13절까지의 말씀은 한 여인이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어드리는 사건을 담고 있습니다. 마가복음과 요한복음도 같은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세 복음서의 내용 전부를 종합해보면, 향유를 붓는 여인은 마리아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죽은 지 4일이 지난 오빠를 살려주신 은혜에 감사해서 성인이 300일 열심히 일해야 살 수 있는 귀한 향유를 아낌없이 부어드린 겁니다. 제자들은 “그 귀한 것을 팔아 가난한 자를 도와주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며 여인을 꾸짖었지만, 예수님은 여인을 칭찬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칭찬의 내용이 참 황당합니다. “여인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사를 위한 것이다.” 이번에도 주님께선 당신의 죽음이 가깝다고 말씀하신 겁니다. 제자들은 이 뜬금없어 보이는 주님의 말씀에 반짝 호기심을 보였다가 금방 잊어버렸을 겁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선 당신의 십자가 죽음과 장사를 어떻게 이렇게 태연하게 말씀하실 수 있었을까요? 13절 말씀에 힌트가 담겨 있습니다. 그 힌트는 바로 복음입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복음의 내용을 한 번 속으로 말해 보시기 바랍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인해 우리가 죄와 사망에서 해방된 사건이 복음입니다. 그러니까 복음은 전적으로 ‘우리’ 아니 ‘나’를 위한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우리에겐 복음이지만, 예수님께는 가장 끔찍한 고통인 겁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선 너무나 자연스럽게 당신의 십자가 처형을 말씀하고 계신 겁니다. 예수님께선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희생되는 일을 기뻐하고 계신 겁니다. 주님은 그토록 우리를 사랑하신 겁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때와 다름없이 우리를 무한하게 사랑하고 계십니다.
바흐는 여인의 찬양을 통해 주님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내 죄로 인해 슬픔과 괴로움의 눈물을 흘립니다. 내 죄를 인하여 슬프고 괴로워서 웁니다. 내 맘 다해 나의 눈물을 향유처럼 주께 부어드리니 나의 주여 받아주소서 나의 눈물 끊임없이 흐르오니 받으소서. 사랑하는 나의 주여, 받으소서”
고난 주간 동안, 주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우리에게 임한 복음을 깊이 묵상하길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혼에서 시작된 찬양, “우리에게 주신 주님의 그 무한한 사랑에 대한 감사의 찬양”이 가득한 삶이 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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