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는 음악을 예배를 위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하신 또 하나의 언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바흐는 교회 음악을 작곡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잘 해석하고 그 의미를 음악으로 선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바흐는 루터가 번역한 독일어 성경을 늘 읽고 묵상했고, 자신의 깨달음을 성경 여백에 적어 두었습니다. 역대하 5장 말씀, 즉 솔로몬 성전이 완성되었을 때 악기를 맡은 자들과 노래를 맡은 자들이 일제히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찬송을 드리자,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구름처럼 임하는 장면 곁에는 이렇게 기록해 두었습니다. “경건한 음악에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함께 하신다.” 바흐가 음악을 통해 이루고자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자신의 곡이 연주될 때마다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고, 그 예배의 자리에 함께 한 백성들이 하나님의 임재와 은혜를 체험하길 간절히 바라며 작곡한 겁니다. 그 영성으로 작곡한 최고의 작품 중 하나가 바로 마태의 수난곡이었습니다.
오늘은 수난의 준비 부분을 함께 묵상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곧 닥쳐올 수난을 어떻게 준비하셨는지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준비를 위해 제자들과 함께 감람산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 깊은 곳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곳에 세 제자를 남겨두신 주님께선 다시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기도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어떻게 기도하셨는지는 같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누가복음이 가장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 하나님이시지만 인간이기도 하신 예수님도 우리처럼 죽음이 두려우셨던 겁니다. 기도하시기 전, 세 제자에게 하신 말씀을 보면 이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 주님의 첫번째 기도도, 하나님의 소명과 죽음 사이에서 치열하게 갈등하고 있는 주님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 주님은 다시 기도하셨습니다.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완전한 순종을 위해 주님은 다시 기도하셨습니다. 세번째 기도 후, 주님은 제자들에게, “일어나 함께 가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죽이러 온 자들로부터 수동적으로 도망가다 또는 기다리다 집히신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직접 가신 겁니다. 수난의 준비를 위해 사용하신 주님의 도구는 바로 기도였습니다. 구원의 계획을 세우시고 이루고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 나가, 아버지의 계획에 순종할 수 있도록 담대한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신 겁니다. 그 기도만으로 십자가 수난에 대한 준비를 완벽하게 하실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선 제자들에게도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앞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제자의 길은 당연히 고난이 따르는 길, 육신의 시험과 유혹을 이겨야 감당할 수 있는 길입니다. 제자의 길을 제대로 잘 가기 위해선 기도가 필수라고 가르쳐주신 겁니다. 오늘 새벽 주님께서 수난을 통해 주시는 첫번째 교훈입니다. 주님처럼 기도로 하나님 뜻에 항상 순종하는 주님의 제자들이 다 되길 축원합니다.
또한 주님은 미래를 위해 제자들을 준비하셨습니다. 오늘 밤 제자들이 다 주님을 버리고 도망갈 것을 미리 알려주시고,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예언이 이뤄지는 것이니 마음에 부담을 갖거나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위로해주셨습니다. 주님 말씀을 잘 못 알아듣고, 다 버려도 자기는 주님을 버리지 않을 거라고 호언장담하는 베드로에게는 오늘 밤 닭이 울기전에 3번 주님을 부인할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핀잔을 위해 주신 말씀이 아니라, 제발 몸을 피하길 바라는 염려의 마음으로 주신 말씀입니다. 이렇게 수난에서 제자들을 보호하신 이유는, 제자들을 통해 교회를 세우고 확장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들을 다시 만나서 주신 소명을 보면 그렇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모든 민족의 제자화, 복음화라는 사명을 주신 겁니다. 주님 뜻대로, 제자들은 사도행전을 써 나갔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주님 오시는 날까지 주님의 제자들이 끊임없이 써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는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페이지를 감당해야 합니다. 오늘 새벽에 주시는 두번째 교훈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과 함께 세상으로 들어가 사도행전을 신나게 써 나가는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바하는 마태의 수난곡을 통해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은 아버지께 무릎 꿇어 만민을 구원하시려 땀 흘려 기도하시니 그 크신 사랑 임했도다. 만민을 위해 쓴 잔, 죽음의 쓴 잔 몸소 드사 세상 죄를 지셨으니 거룩하도다. 주님의 뜻이 땅 위에 이루어지이다. 기쁘게 내 본분 다하리라. 쓴 잔과 십자가 우리 위한 것이니 나 주와 함께 하리 그 입에서 젖과 꿀이 흘러나와 축복해 주시고 죄에서 건지시니 오 귀한 그 사랑이여’ 오 귀한 그 사랑이여.”
기도로 모든 장애물을 극복하고 주님 주신 소명, 복음 전파에 힘쓰는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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