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3년 5월 1일 아프리카의 한 마을, 전형적인 원주민 가옥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으로 죽어 있는 한 영국 노인이 발견되었습니다. 그 마을의 주민들은 그 노인의 심장을 빼내어 가장 큰 나무 밑을 파고 그곳에 묻었습니다. 그때 주민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의 심장은 전 아프리카인들의 것이다.” 주민들은 그의 심장 없는 시신를 미이라로 만들어 노인의 가족이 있는 영국으로 운반하기 위해 그곳에서 2400km나 떨어져 있는 해안으로 옮겼습니다. 길도 없는 밀림을 통과하면서까지 시신을 운반하는 주민들의 모습에서 노인을 향한 사랑과 존경을 물씬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노인은 바로 아프리카 선교하면 떠올리게 되는 데이빗 리빙스턴이었습니다.
리빙스턴은 1840년 12월 아프리카를 향해 떠난 후, 죽기까지 단 한 번 영국에 돌아왔을 뿐입니다. 그것도 영국에서 머물렀던 기간도 일년 정도였습니다. 1873년 생을 마감했으니 32년동안의 삶을 아프리카 선교를 위해 헌신한 셈입니다. 영국에서 성장한 자녀들은 평생 얼굴 한 번 제대로 본 적이 없는 아버지의 시신을 받아 장례를 치러야 할 정도였습니다.
그는 아프리카에서 선교하는 동안 수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30여차례나 열병에 걸려 몇 차례는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고, 1843년에는 정글에서 사자를 만나 죽을 뻔도 했습니다. 그때 입은 상처 때문에 왼팔은 못쓰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도 리빙스턴은 아프리카 선교 사역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선교 사역은 독특해서 그는 한 지역을 개척하면 다른 선교사에게 그 지역을 맡기고 또 다시 미개척 지역을 찾아 더 깊이 깊이 들어갔습니다. 참 힘들었을텐데 그는 이 선교의 과정을 “끝없는 소풍”이라고 부르며 긍정적으로 즐겼습니다.
그런 고통의 삶을 견디다 16년만에 영국으로 돌아 왔으니 얼마나 심신이 편했겠어요.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가족, 친구, 문명의 편안함 이 모든 것은 리빙스턴을 영국에 잡아 두기에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리빙스턴은 일년만에 그 편안함의 유혹을 다 떨치고 다시 고통과 위험으로 가득한 아프리카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영국에 머무는 동안 가진 한 초청 강연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이프리카 선교 사역이 참 힘들었을텐데 어떻게 견딜 수 있었나요?”
그때 리빙스턴은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언어가 안통하는 사람들, 저를 불신하는 사람들, 적대적인 사람들로 가득한 그곳에서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읍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전 주님의 말씀,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겠다”고 하신 말씀 속에서 늘 위로와 격려를 받았습니다. 전 이 영원한 진리에 일생을 걸었습니다. 지금 저는 이 말씀이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자신있게 증거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는 지금 있는 자리에서 주저 앉고 싶은 성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생각은 다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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