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숲

크레그 리스트를 통해 만나다

채우미 2018. 10. 9. 00:44







20년 가까이 사용하던 CD Player가 숨을 멈추고 말았습니다. CD를 넣어도 읽지 못하고 표시창에 00:00만 뜨더군요. 할 수 없이 수리점에 맡기고 거실에서 듣던 플레이어를 연결해 음악을 듣고 있었습니다. 소리가 디테일하지 못하고 서로 엉키는 바람에 주로 진공관이 덥혀질 때까지만 듣다가 LP를 들어야 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Craig-list를 통해 쓸만한 물건이 없는지 검색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이 놈이 그곳에 떡 출현한 겁니다. 가격도 장터에서 거래되는 수준에 비해 거의 반값이었습니다. 그래서 판매자에게 당장 살 의향이 있다고 메일을 보내두었습니다.


약속한 날짜에 판매자의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거실 엔터테인먼트 장식장에 오디오 제품이 가득했습니다. 다 눈에 들어오지 않고 이놈만 눈에 띄었습니다. 소리가 어떤지 테스트해보았지만 앰프와 스피커가 상태가 좋지 않아서...그저 작동을 잘하는지만 점검해야 했습니다. 기기의 상태는 아주 좋아보였습니다. 

"30년쯤 전에 사놓고는 별로 듣지 않았어요. 앞으로는 LP를 들으려고 턴테이블을 주문해둔 상태라 처분하는 겁니다. 워낙 잘 만들어져서 오래동안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을거예요." 

60대 후반쯤 돼 보이는 주인장의 말에서 신뢰가 느껴졌습니다. 


기기에만 정신이 팔려 거실을 둘러보지 못했는데...서가에 책이 잔뜩 꽂혀있었습니다. 다 경제학과 관련된 책이었습니다. "경제학을 전공하신 모양이네요?" 하고 묻자, "아니 아내가 UIC(일리노이 주립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쳤어요. 지금은 은퇴했구요."


집에 돌아와 가지고 있는 메인 기기에 연결하고 음악을 듣는데...큰 감동이 몰려왔습니다. CD 음인지 LP 음인지 분별이 안 될 정도로 아날로그적인 소리를 풍성하게 쏟아냈습니다. 소리는 얼마나 클리어하고 디테일한지 음악을 듣는 내내 입을 다물 수 없었습니다. 시판 당시 시카고 트리뷴에 실렸던 광고가 절대 과장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하, 파가니니, 베에토벤, 모짜르트...교향곡, 소나타, 협주곡...두 시간을 푹 빠져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함께 듣던 아내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당분간 LP는 안 듣겠네요."

아마도 청음 비중이 달라질 것 같긴 합니다.  


내게 소리의 감동을 준 녀석의 이름은 

Revox사의 B-226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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