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숲

소리에 취하다...하나.

채우미 2014. 5. 16. 05:48


소리에 반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 일입니다.

가곡을 잘 부르던 친구가 있었는데, 하루는 그 친구 집에 놀러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너 음악 좋아하지' 하며 날 거실로 데려갔는데...그날 소리에 흠뻑 취하고 말았습니다. 4개의 스피커에서 쏟아져 나오는 소리는 촌뜨기이던 날 황홀경에 밀어넣고 말았습니다. 베토벤, 슈베르트 등을 들었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납니다. 2시간 이상을 꼼짝도 않고 앉아 음악을 듣고 있는 날 친구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볼 정도였습니다. 그날 소리 숲 입구에 서 있었던 겁니다. 원하기만 하면 그 아름다운 소리숲에 언제든 들어가 산책할 수 있는 친구가 부럽더군요. 이때부터 소리숲에 대한 갈증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고3때 아버님이 독수리표 전축을 들이셨을 때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릅니다. 그때 용돈을 아껴 처음 산 라이센스 음반이 '한국 명가곡집(당시 드라마 주제곡으로 유명해진 '비목'이 들어있던)'과 '베토벤 교향곡 5번'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후에도 라이센스 음반을 몇 장 더 구입했는데 기억나는 것으로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와 '영화 음악 모음'(쥴리엣 역을 맡은 올리비아 핫세가 표지를 장식한)였습니다. 

어느 날은 다락방에서 줄로 묶어놓은 낡은 음반('터키 행진곡'을 '토이끼 행진곡'으로 표기한)들을 발견했는데, 누가 이런 음반을 모았을까?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아버님이셨습니다. 소리를 추구하는 DNA를 물려받은 셈입니다.


그러나 재수를 시작하면서 '소리숲' 진입은 잠시 접어두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잠시는 오랜 시간의 동면이 되고 말았습니다.

대학에 들어가 교내 클래식 감상실에 가끔씩 들르긴 했지만 

공부와 입대와 결혼과 취업의 속도감 넘치는 삶의 변화 속에서 

'소리숲'에 대한 환상마저 까맣게 잊고 말았던 겁니다.


1987년 금성사에 들어가 수출 업무에 전력을 다하던 중 

주재원이 되어 미국 시카고로 이사를 나오게 되었습니다. 

1992년 여름의 일입니다.

이때 의식 밑에서 동면하고 있던 '소리숲'에 대한 갈망을 일시에 깨우는 사건이 일어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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