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숲

소리에 취하다...둘

채우미 2014. 6. 3. 00:53

새벽부터 후덥지근하더니 조금 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창을 열어 두니 시원한 빗소리가 바람과 함께 서재로 들어섭니다.


막 Mc225 청소를 마친 후였습니다. 일년 동안을 방치해두었더니 크롬판이 어둡더라구요. 그래서 면으로된 천을 가지고 30분 정도 정성껏 닦아주니 명징한 거울로 되살아났습니다. 기왕 청소한 김에 단자와 케이블들마다에 Deoxit D5를 뿌려주었습니다. 청소를 마치고 진공관들을 꽂아주니 기기들이 환히 웃는 얼굴입니다. 기념으로 진공관에 불을 지핀 후, 요요마와 엠마누엘 엑스가 연주한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온을 걸어두었습니다. 소리가 한층 업그레이드 된 것 같아 저도 기쁩니다.


소리에 취해가는 과정을 정리해보고 있습니다. 


주재원 신분으로 시카고에 와보니 대학 선배 한 분이 먼저 와서 근무하고 계셨습니다. 전자공학을 공부하신 분인데, 전공을 택한 이유가 재미있었습니다. 좋은 오디오를 만들어보려는 욕심 때문이었다니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선배님의 집 지하실은 하이파이 기기로 가득했습니다. 소리에 취해봤을 뿐이지 기기에는 촌사람이나 다름없던 제겐 처음 듣는 이름들이 수두룩했습니다. 선배님의 자상한 설명 덕분에 기기 이름들이 서서히 귀에 익숙해져갔습니다. 

선배님이 소장하고 있는 기기들은 소위 말하는 명품들이었습니다. 2천장 가까운 LP들과 1000여장의 CD들도 위압적이었구요.  

"미국이 오디오 하기 좋은 이유가 있어요. 귀로만 듣던 명품들 구하기가 쉬운 겁니다. 그것도 저렴한 가격에...요즘은 인터넷이 발달해서 더 기기 구하기가 쉬워졌어요. 또한 오디오 하는 인구도 많아 바꿈질도 용이하구요."


선배님의 설명을 통해 들은 명품의 이름들을 기억해보면...

앰프만 해도 마란츠(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기기 7&9), 맥킨토시, 스캇, 하만카든, 에이코, 애큐페이즈, 마크레빈슨, 다이나코 등입니다.

교제하는 동안 선배님이 오디오의 전도사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청난 양의 기기를 보유하고 있었고 그 지식도 방대했기 때문입니다. 


명품들로 이루어진 시스템을 통해 음악을 듣는 동안 잠시 잊었던 오디오에 대한 꿈이 새록새록 되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제 마음을 선배님이 들여다 보셨던 것 같습니다. 제게 맞는 오디오 시스템을 아주 저렴한 가격에 분양해주셨으니 말입니다.

당시 소리의 숲으로 날 이끈 첫번째 하이파이 친구들입니다. 

파워: 애큐페이즈 P300, 프리: 럭스맨 CL35, 쏘스: NAD502, 스피커: 탄노이 시스템 10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고등학교 때 꿈꾸던 소리의 숲에서 매일 산책하는 기분이 그랬습니다.


선배님은 소리에 대한 내 꿈을 되찾아주셨고 동시에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운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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