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솔길 의자에서

뭉클한 이야기 54

채우미 2025. 5. 8. 06:14

 

 

A.D. 249 로마 제국의 황제로 데시우스가 즉위하면서 교회에 대한 박해가 심해졌습니다. 국가 차원에서 박해가 추진되었고, 박해의 목적은 배교였습니다. 잡아들인 교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황제를 신으로 인정하기만 하면 형벌을 면해준다는 정책을 통해 교회를 흔들었던 겁니다.

 

끔찍한 형벌을 피해 많은 교인들이 배교하는 심각한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전도란 꿈도 없었습니다. 당시 교회 지도자들의 저서를 보아도 전도를 다루고 있는 내용이 거의 없을 정도였습니다. 

 

251 로마 제국은 위기를 됩니다. 페스트가 극성을 부리기 시작했던 겁니다. 귀족과 정치 지도자들은 필요한 조처를 취하기 보다는 자기와 식구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병이 없는 곳을 찾아 도망가기 바빴습니다. 거리 거리 마다 버려진 시체들로 가득했고, 병의 증상이 있다 싶으면 인정사정없이 내다 버리고 말았습니다. 버려진 병자들은 소망없이 죽는 순간만 기다려야 했습니다.

 

이 때 키프리안 주교는 교회를 향해 이 소망없이 죽어가는 병자들을 우리가 돌봐야 한다고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설교한 내용을 잠간 들어보실까요? 

 “우리가 단지 우리들만을 소중히 여기고 우리끼리만 자비를 베푼다면 그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세리나 이교도들이 하는 것 이상으로 선으로 악을 이기고, 하나님께서 관용을 베푸신 것 같이 관용을 베풀고, 원수조차도 사랑하며, 주님께서 권고하신 대로 핍박하는 자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한다면 우리는 온전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변함없이 태양을 떠오르게 하시며 비를 내리셔서 씨앗들을 기르시고 이러한 모든 선하심을 그의 백성들에게 보이실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그렇게 하신다. 만일 누가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다면 그 사람은 아버지를 본받아야 함이 마땅하지 않은가?

 

키프리안의 설교에 도전받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전염병이 돌고 있는 거리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거리로 나간 성도들은 병자들이 크리스천이든 이교도이든 상관하지 않고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그야말로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않고 이웃을 섬겼던 겁니다. 이에 감동된 주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사랑을 실천하는 성도들에게 파라볼라노이라는 영예로운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본문 30절에 등장하는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않는다는 동사를 명사형으로 바꾼 단어가 바로 파라볼라노이입니다. 말 그대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라는 뜻입니다. 

 

파라볼라노이의 사랑 실천을 지켜본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복음을 말로 전할 순 없었지만, 주님의 사랑을 손과 발로 실천함으로 교회는 더 크게 부흥할 수 있었습니다. 정부의 조직적인 핍박으로 어려운 때에 교회는 오히려 성장하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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