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솔길 의자에서

또 다녀오다

채우미 2014. 10. 15. 01:55

약속된 미팅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니 밤 8 50그 늦은 시각 아내와 함께 다운타운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내 노트북이 고장났어제조 회사로 전화해보니 수리센타로 보내야 고칠 수 있데그런데 이 근처엔 보낼 곳이 없어요도와주세요.” 하고 연락이 온 모양 입니다그래서 문을 막 들어서자마자 재촉하는 아내와 함께 길을 나선 겁니다.


(이 사진은 이 사건 후 또 방문해서 찍은 사진 입니다. 너무 자주 가는 걸까요? :))


아무리 일 때문에 가는 거라고는 하지만 너무 자주 가는 것 아냐? 막내 친구들이 보면 샘 부모님들은 일주일마다 오네하며 웃겠다.” 큰 아이가 클리블랜드로 떠나기 전 막내를 꼭 보고 싶다고 해서 지난 주에도 갔었거든요. “마땅한 이유가 있는데 어때요. 이렇게 해서 한 번 더 볼 수 있으니 좋기만 하네요.” “그래도 막내 친구들을 만나면 왜 왔는지 일일이 설명해줍시다.” 하곤 기분좋게 웃었습니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다운타운으로 가는 길은 뻥 뚫려 있었고, 맑은 날씨 덕분에 불 밝힌 스카이 라인의 멋진 풍경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습니다.

9 40분경. 손님들이 차를 댈 수 있는 학생회관 앞 간이 주차장에 들어서니 저만치에서 막내가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반갑게 포옹하고 우리를 다시 이곳 캠퍼스로 불러내린 못된(?) 노트북을 차 뒷자리에 싣고나자 막내가 묻습니다. “잠간 학생회관에 들어왔다 갈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이 그럼 커피 한 잔 하고 갈까?” 되물었습니다. 일층 안내 데스크에서 만들어준 출입증을 들고 커피숍이 있는 이층으로 올라갔습니다.

14년 전엔 공간 전체가 학생들이 자유롭게 쉬거나 책을 읽을 수 있는 라운지였는데, 지금은 공간의 10% 정도를 떼내어 커피숍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바리스타가 아닌 아르바이트 학생들이 만들어주는 라떼였지만 맛이 괜찮았습니다. 둘러보니 분위기는 14년 전이나 다를 바 없더군요. 창쪽으로 의자를 나란히 놓고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부류, 책을 손에 쥐고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는 부류, 혼자 책을 들고 사색하고 있는 부류이 세 부류가 그 너른 공간을 나눠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첫번째 부류에 속해 막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룸메이트는 작년에 예수님을 만났데. 나처럼 아빠가 목사님인데, 그 친구는 파티족이었데. 술 마시고 마약도 하고그러다가 지난 해 주님을 만나고 선교에 헌신하기로 했데일주일에 한 번씩 UIC 캠퍼스에 나가서 전도하는데 주로 서 아시아 학생들을 상대로 복음을 전해빨래? 잘하고 있어.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옷도 다 내가 손수 빨아 입은 거야여긴 친구 사귀는 게 너무 쉬워. 지나가다 ‘Hi’ 하면 바로 서로를 소개하고 대화까지 연결돼.” 막내의 얘기를 듣는 동안 제 마음은 뭔가를 내려놓은 후에야 맛볼 수 있는 홀가분함으로 채워졌습니다.

막내와 그곳에서 만난 한국 학생들과의 탁구 게임으로 마지막을 장식했습니다. 부모님이 우쿠라이나에서 선교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는 여학생(3학년)이 이러더군요. “이민 목회도 선교라고 생각해요. 미국도 이방 땅이긴 마찬가지잖아요.”

주차장에서 막내를 끌어안고 간단히 기도한 후 차에 올랐습니다. “오면 올수록 마음이 놓이네요. 더 의젓해진 것 같아요.” 아내의 소감이었습니다. 막내에 대한 염려가 점점 옅어지는 이유를 생각하면서 공동체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주님께서 사용하시는 도구로 준비되기 위해 전세계에서 몰려온 아이들로 이루어진 공동체가 그 답이라는 생각이 든 겁니다.

우리 교회도 주님께서 마음놓고 주님의 양들을 맡기실 수 있는 신앙 공동체로 계속 성장해가길 소망하며 기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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