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중 기도의 제목을 찾으면, 전용 노트에 해당 말씀을 나 자신의 언어로 정리해서 기록하고 그 곁에 칼라가 다른 펜을 사용해서 기도 내용을 대화체로 적습니다.
몇 달전부터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에 시작한 이 영적 작업을 주님과 산책하듯 느릿느릿 여유를 가지고 해 나가고 있습니다. 성경 읽는 양을 정해두지 않았습니다. 기도 제목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는 억지도 부리지 않습니다. 어느 날은 주님께 드려야 할 기도 내용이 많아 한 장을 끝내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어느 날은 몇 장을 기도 없이 훌쩍 읽어내려가기도 합니다. 너무 피곤한 날은, 여행자가 그렇듯이, 쉬어가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 작업을 잊지 않으려고, 전용 노트를 책상 한 켠 눈에 잘 띄는 곳에 올려두었습니다. 평생의 작업이다 생각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이 영적 여행을 출발했는데, 참 좋습니다. 오늘은 그 여정 중에 얻은 깨달음 둘을 나누려고 합니다.
사사기의 영토에 발을 들이고 여행을 시작했는데, 기드온 이야기 앞에서 멈춰 서게 되었습니다. 제 눈길을 사로잡은 건, 미디안과 전쟁하기 전 체험한 양털의 기적도 아니고, 하나님만 믿고 단 3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13만 5천명이나 되는 미디안 대군을 이긴 장면도 아니었습니다. 아주 뒤늦게, 전세가 이스라엘 쪽으로 완전히 기울고 난 후 전투에 참여한 에브라임 사람들의 무례함을 대하는 기드온의 태도가 절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은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 왜 우리를 부르지 않았느냐?”고 오히려 기드온을 책망합니다. 기드온의 화를 돋구기에 충분한 상황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가 한 일을 너희들이 한 일과 감히 비교할 수 있겠느냐?” 기드온의 겸손한 대답에 에브라임 사람들은 곧바로 잠잠해졌습니다. 아마 머쓱해졌을 겁니다. 자신을 드러내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춘 자의 겸손이 지닌 힘이 참 위대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트에 “주님, 기드온의 겸손을 갖게 해주세요,” 간단하지만 간절한 기도 제목을 적었습니다.
기드온을 읽고 난 후, 삼손의 이야기가 평소보다 더 안타까운 마음으로 다가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상상 이상의 특별한 힘을 주셔서 사사라는 아주 중요한 직분을 맡겨 주셨는데, 자기 보다 돈을 더 사랑하는 한 이방 여인의 치마폭에 빠져 정신 못 차리는 삼손이 참 불쌍했습니다. 결국 특별한 힘의 비밀까지 이방 여인에게 알려준 삼손은 머리카락과 시력 그리고 연인 모두를 잃고 블레셋의 포로가 되어 종의 신세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삼손의 삶을 그렇게 끝내지 않으셨습니다. 마지막 기회를 주신 겁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눈 먼 삼손이 마지막으로 온 힘을 쏟아 블레셋 사람 3천여명을 죽이는 장면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삼손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신 방법 때문입니다. 기적과 같은 방법을 사용하셨다면 감동이 덜했을 겁니다. 하나님께선 그저 머리카락을 자라게 하셨을 뿐입니다. 삼손의 머리카락만 자라나나요? 아니, 머리카락이 자라는 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자연 법칙인 겁니다. 하나님께선 이 특별할 것 없는 자연 현상을 통해 힘을 돌려주셨고, 죽기 전, 삼손은 그 힘을 사용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동안, 하루가 참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하루는 특별할 것 없어 보이지만, 하나님의 자녀로서 충분히 거룩하게 살지 못한 우리들에게 그 전날의 삶을 만회할 수 있도록 주신 기회이고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자 너무 귀한 겁니다.
“주님, 선물로 주시는 하루를 전날 보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는 기회로 삼게 해주세요,” 이렇게 노트에 적었습니다.
'예수커리커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신을 알고 하나님을 알라 (0) | 2023.09.09 |
---|---|
2023 선교 보고: 하나님께서 다 하셨다 (0) | 2023.09.02 |
주님 다시 오시는 날 (0) | 2023.08.12 |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 (0) | 2023.08.05 |
교회를 위한 기도 3 (0) | 2023.08.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