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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주간 여섯째 날: 수난 후

채우미 2023. 4. 8. 23:06

 

바흐가 주님을 향한 사랑을 다 쏟아부어 작곡한 마태의 수난곡은 아쉽게도 바흐 생전에도 단 몇 번 연주되었을 뿐입니다. 그것도 라이프찌히에서만 연주되었을 뿐입니다. 대규모 오케스트라와 대규모 합창단 그리고 독창자들을 동원해서 3시간 넘게 연주해야 하는 대곡을 소화한다는 건 쉽지 않았을 겁니다. 게다가 당시 바흐는 잘 알려진 음악가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바흐 사후, 마태의 수난곡은 세간에서 까맣게 잊혀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선 이 귀한 곡을 잠자게 놔두지 않으셨습니다. 멘델스존에 의해 다시 살아나게 하셨습니다. 유대인 출신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난 멘델스존은 신앙심이 깊었습니다. 그리고 예술을 사랑하는 그의 가문은 풍부한 재력으로 유명 작곡가들의 악보를 포함, 많은 예술 작품들을 사 모았습니다. 멘델스존은 그 소장품들 사이에서 이 보물을 발견한 겁니다. 그때가 14살이었습니다. 악보를 보는 순간 곡에 담긴 깊은 영성에 감동된 멘델스존은 그때부터 6년 동안 악보를 연구하고 연습한 후, 20살이 되던 해, 드디어 베를린에서 이 곡을 연주합니다. 그때가 1829, 이 곡이 처음 연주되었던 1729년에서 꼭 100년 후의 일이었습니다. 그후 마태의 수난곡 뿐 아니라 바흐의 모든 음악이 재조명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묻혀 있던 마태의 수난곡을 부활시키신 겁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에 일어난 일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중 한 사건은 감동적이고, 다른 한 사건은 걱정스럽습니다. 그런데 사뭇 달라 보이는 이 두 사건의 중심에는 하나님 말씀이 주제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먼저 감동적인 사건은 아리마대 요셉의 등장입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니고데모도 함께 등장합니다. 두 사람은 빌라도의 허락을 받아,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시신을 내리고 향품을 바른 후 세마포로 싸서 요셉이 소유한 새 무덤으로 옮겼습니다. 이 두 사람은 이렇게 행동함으로 자기들도 예수님의 제자라는 걸 공개적으로 선포합니다. 이들의 등장이 감동적인 것은 둘 다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공생애 기간 중 산헤드린 공회는 그야말로 예수님의 적이었습니다. 결국 공회는 예수님을 십자가 처형의 자리로 내몰고 말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라고 밝히는 건, 그동안 유대 사회에서 쌓아온 명성과 권력을 다 포기할 것을 각오한 행동인 겁니다. 그러니까 이 두 사람은 아주아주 큰 믿음의 용기를 낸 겁니다. 이 두 사람을 공회원에서 모든 걸 포기할 수 있는 주님의 제자로 바꿔 놓은 힘은 뭘까요? 그 답은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만남을 기록하고 있는 요한복음 3장에 있습니다. 그건 바로 주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이 만남에서 예수님은 복음의 핵심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거듭남을 비밀을 말씀하셨고, 복음의 핵심인,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라는 말씀도 주셨습니다. 주님의 이 생명의 말씀이 니고데모를, 그리고 요셉의 삶을 바꿔 놓은 겁니다.

 

히브리서 말씀처럼, 하나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 날선 어떤 검 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쪼개는 능력이 있는 겁니다. 우리도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실천해서, 살아갈수록 하나님의 형상을 점점 더 많이 회복해가는 복된 삶이 되길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걱정스런 사건은 뭘까요? 예수님의 부활의 사건을 왜곡하려는 공회원들의 노력입니다. 피숫군을 두어 예수님의 무덤을 지키는 것도 모자라, 예수님 부활 후에는 그날 무덤을 지켰던 자들을 매수해서,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갔다고 소문을 내라고 한 겁니다. 오늘 읽지 않았지만, 28장을 보면 그들이 만들어 낸 소문이 유대 사회에 퍼졌고, 지금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가만히 있어서는 안되는 겁니다. 사도행전에서 주님의 제자들이 그 험한 환경 속에서도 생명을 내어놓고 복음, 진리를 전하고 선포한 것처럼, 우리도 이 일에 힘을 써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 땅이 복음의 진리가 흘러 넘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겁니다.

 

우리 두란노 식구들 모두가 신실한 복음의 전령이 다 되길 축원합니다.

 

바흐는 마태의 수난곡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이제 주님 쉬시도다/ 우리 위해 지신 죄의 고통 사라지리/ 거룩하신 !/ 회개하고 주께 오니 주님 옆에 받아주소서/ 동안 사랑 감사하리니 안에 나의 영혼 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