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커리커처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복되다

채우미 2022. 7. 1. 11:03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만난 제자들의 생생한 증언에도 도마는 주님의 못 박힌 손과 창에 찔린 옆구리를 보고 만지기 전엔 결코 믿을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일주일 후 제자들을 다시 찾아오신 주님은 도마를 향해 원하는 대로 해서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선 제자들 모두가 부활 신앙을 갖길 원하시는 겁니다. 주님의 부활이 구원의 마침표이고 또한 구원에 대한 확증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수난을 통해서는 우리가 짊어지고 있던 죄의 짐을 완전히 없애 주셨고, 부활을 통해서는 우리를 사망의 그늘에서 건져내 영원한 생명의 빛으로 옮겨 주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예수님의 부활로 완성된 겁니다. 또한 구원을 통해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증거하는데,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 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어디 있겠어요. 부활의 주님을 본 도마는 즉시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십니다.”라고 믿음을 고백합니다. 이후 제자들은 복음을 전할 때마다 주님의 부활을 빼놓지 않고 강조했습니다.

 

바울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그는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첫 편지에서 부활을 상세하고 명확하게 설명하고 강조한 후, 이 부활 신앙 안에서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 권면합니다. 2차로 로마 감옥에 갇혀 순교를 앞두고 쓴 편지에선, 죽음을 장막의 끈을 푸는 일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땅에서의 삶을 여행으로, 죽는 순간 가게 될 낙원을 집으로 비유하고, 이젠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여행용 텐트의 끈을 풀고 있다는 겁니다. 확고한 부활 신앙 때문에, 바울은 죽음 앞에서 참 평안합니다.  

 

요즘 시대를 보면, 주님의 십자가 수난 사건이 주님의 부활 사건 보다 훨씬 더 강조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과학과 이성이 지배하고 있는 이 시대에 주님의 부활을 전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주님의 부활과 부활 신앙은 그렇게 취급되어서는 안 됩니다. 부활 신앙은 기독교의 핵심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행전 시대의 제자들처럼, 흔들리지 않는 부활 신앙 위에 삶을 세우고, 주님의 부활을 담대히 증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선 주님을 직접 보지 못하는 세대를 향해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보지 못하는 세대를 위해 준비해두신 구원 계획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에선 그 계획을 조금 더 뚜렷하게 보여줍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신 후, 실망한 두 제자가 엠마오를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이때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들과 동행해 주셨는데, 두 제자는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에게 당신을 드러내 보이는 대신, 주님은 구약의 말씀을 풀어서, 주님의 십자가 수난과 부활의 의미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만남 후 제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길에서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주실 때, 우리 마음이 뜨겁지 않더냐?” 주님께서 전해주신 복음의 말씀과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 제자들은 주님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깨닫게 된 겁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볼 수 없는 세대를 위해 준비하신 구원 방식은 바로 복음과 성령인 겁니다. 바울이 잘 정리한 것처럼, 구원받을 자가 복음을 들을 때, 성령님이 그에게 그 복음을 깨닫고 믿을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시는 겁니다. 그렇게 구원받을 자들이 복되다고 하신 겁니다.

 

우리는 다 이렇게 해서 구원받은 자들입니다. 이젠 우리가 받은 복음을 누군가에게 전해야 할 차례입니다. 우주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전할 때, 성령님께선 그 선물의 포장을 풀어 그 내용물이 무언지를 보게 하시고 믿게 하시고 누리게 하실 겁니다. 우리 모두가 이 아름다운 소명을 잘 감당해서, 우리가 전한 복음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이 생명을 얻고 복을 누리는 장면을 목격하며 감격하고 기뻐하고 감사하는 삶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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