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신 때를 지금의 시간으로 계산하면, 금요일 오후 3시였습니다. 지금 예수님의 시체 앞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여인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포함한 여인들만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을 겁니다. 당시 로마 군대는 십자가에서 처형을 당한 자의 시신을 짐승의 밥이 되도록 그냥 십자가에 매달아 두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3년 동안이나 따르며 동고동락했던 열 한 제자들은 다 도망가고 없었습니다. 그러니 용감하게 나서서 주님의 시신을 내려 달라고 할 제자도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게다가 유월절과 겹친 안식일이 3 시간 후면 시작됩니다. 그때가 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겁니다. 시신을 받는다고 해도, 장례에 필요한 향품과 세마포를 사고 안장할 무덤을 구하는 데 3시간은 아주 빠듯한 겁니다. 그래서 여인들은 애가 타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을 겁니다. 이때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가 등장해 예수님의 시신을 제대로 잘 모십니다. 이 두 사람의 정체와 행동이 우리 신앙인들에게 큰 도전을 줍니다.
아리마대 출신의 요셉은 이 장면에서만 딱 한 번 등장합니다. 하지만 그가 남겨둔 영적 향기는 아주 강렬합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유대인들을 두려워해서, 예수님께서 살아 계실 때는 이 사실을 감추고 살던 사람입니다. 그의 신분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유대교 최고 의결 기관인 산헤드린 공회의 멤버였던 겁니다. 예수님 공생애 기간 중 공회는 그야말로 예수님의 적이었습니다. 결국 공회는 예수님을 십자가 처형의 자리로 내몰고 말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의 제자라고 밝힌다면, 요셉은 사회적 지위 뿐 아니라, 자신이 이룬 모든 것을 다 잃을 수도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요셉은 예수님과 자기가 소유한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을 정도로 헌신적인 제자는 아니었던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수난을 당하기 시작할 때부터 그의 믿음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공회가 예수님을 죄인으로 내몰 때 그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예수님께서 죄인으로 몰려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시고, 따르던 제자들은 다 도망간 이 흑암의 시기에 “난 예수님의 제자다.”라고 당당히 선포하면서 나타난 겁니다.
니고데모의 영적 형편도 비슷합니다. 요한복음 3장 말씀을 보면, 니고데모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을 보고, 이 분이 메시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고, 늦은 밤에 예수님을 찾아갑니다. 사람들의 눈길을 피해 주님을 찾은 이유는 그의 신분 때문이었습니다. 그도 공회원이었던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공의로부터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이날 밤 주님과 만나 대화를 나눈 후 니고데모의 삶은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요한복음 7장에도 그가 등장하는데, 공회원들이 예수님을 비방하자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변호한 겁니다. 물론 공회의 거친 분위기 때문에 더 이상 변호하지 못했지만, 큰 변화가 일어난 겁니다. 이때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을 향한 니고데모의 마음을 알아보고, 교제를 시작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오늘 두려워서 아무도 나서지 않는 때, 예수님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요셉과 함께 나선 겁니다.
그들의 삶을 변화시킨 것은 무엇일까요? 니고데모를 통해서 짐작할 수 있는데, 바로 말씀입니다. 니고데모나 요셉은 다 구약에 능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겐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니고데모와의 첫 만남에서 이 사실을 금방 알아보신 주님은 니고데모에게 천국 복음을 아주 진지하고 상세하게 전해 주셨습니다. 복음의 핵심,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니라.” 요한복음 3장 16절도 이때 주신 말씀입니다. 그날 밤 니고데모는 복음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가면서 점점 이해가 되고 결국 믿음이 생긴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공생애를 지켜보면서, 하나님께서 구약을 통해 주신 약속이 주님을 통해 하나하나 실현되고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을 겁니다. 결정적으로 주님께서 수난을 당하는 과정을 보면서, 이사야 53장과 시편 22편 말씀이 그대로 성취된 걸 보며, 이분이 바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아라는 걸 확신하게 되었을 겁니다. 그들의 변화 중심에는 말씀이 있었던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력과 운동력이 있어서 날카로운 칼처럼 사람의 혼과 영과 골수와 관절을 쪼갠다는 히브리서 4장의 말씀처럼, 요셉과 니고데모의 영혼 안에서도 강하게 역사하신 겁니다.
이것이 바로 요셉과 니고데모의 삶이 우리에게 주는 첫번째 교훈 입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 말씀을 창자까지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삶이 되길 축원합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말씀을 통해, 온전한 사람으로 변화되고, 그 변화된 모습으로 하나님의 일을 온전하게 감당하는 참제자들이 다 되길 축원합니다.
예수님을 믿게 된 요셉과 니고데모는 자기들이 예수님의 제자인 것을 더 이상 숨기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지금까지 쌓아 놓은 것을 다 잃을 수 있는 상황 속에서도, 당당하게 그들의 믿음을 행동으로 나타낸 겁니다. 요셉은 담대하게 빌라도 총독을 찾아가 장사를 지낼 수 있도록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고 청했고, 자기를 위해 만들어 놓은 새 돌무덤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시신에 바를 향품 100근, 약 75 파운드를 가지고 왔습니다. 요셉과 니고데모는 행동으로 “예수님은 메시아, 곧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고 신앙 고백하고 있는 겁니다.
두 사람의 삶이 주는 두번째 교훈은 믿음은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겁니다. 야고보서 2장의 말씀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겁니다. 이 시대 교회가 점차 힘을 잃어가고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행함이 없는 믿음 때문입니다. 교회가 다시 부흥의 시대를 맞으려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믿음을 담대하게 실천하는 성도들로 교회가 가득해야 하는 겁니다. 500년 전의 종교 개혁의 목적이 하나님 말씀을 성경을 성도들에게 돌려주는 것이었다면,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받은 말씀을 실천하는 개혁을 이루어야 하는 겁니다. 우리 두란노 식구들 먼저 이 개혁의 전선에 나서길 원합니다. 그래서 이 어둡고 썩어져 가는 세상 속에서 빛을 내고 짠맛을 내는 주님의 참제자들이 다 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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