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만난 후 쏟아놓은 욥의 마지막 고백엔 묵직한 교훈들이 담겨 있습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고난을 당하기 전까지는 간접 경험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왔는데,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직접 만나게 되어서 너무 기쁘다는 고백입니다. 백번 듣는 것 보다 한 번 보는 것이 훨씬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귀로 듣는 경험과 눈으로 보는 체험은 이처럼 큰 차이가 납니다. 그런데 고난이 하나님을 직접 체험하는 통로가 된다는 겁니다.
예수님께선 이 땅에 100% 인간 100% 하나님으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좇던 사람들 중 하나님으로서의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드물었습니다. 대부분은 인간으로서의 주님만 본 겁니다. 그런데 고난 중에 갈급하고 가난한 심령으로 주님을 찾아온 사람들은 거의 다 하나님으로서의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혈루병에 걸려서 12년 동안이나 고통 속에 살아온 한 여인이 그랬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자기 병이 나을 것이라고 믿고 주님께 다가갔습니다. 혈루병 환자가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는 자리에 간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환자와 신체적 접촉만 있어도 사람들은 부정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2년 동안이나 격리되고 소외된 삶을 살아온 그녀가 사람들 틈에 끼기 위해선 까마득하게 높은 제도적 심리적 벽을 넘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고통을 끝내야겠다는 그녀의 갈급한 마음은 필사적인 행동을 낳았습니다. 결국 주님의 옷자락을 잡은 여인은 즉시 병에서 치유됩니다. 혈루병이라는 고난을 통해 전능하신 치유자 성자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던 겁니다.
세상적인 눈으로 보면 고난은 불편하고 그래서 피하고 싶은 대상입니다. 그렇다고 100% 피할 수도 없는 것이 인생입니다. 욥의 교훈을 따라 고난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고난을 만나면 하나님을 더 깊고 더 생생하게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왔다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고난을 통해 가난한 심령으로 주님께 매달림으로 지금까지 간접적으로만 알아온 하나님을 직접 체험하는 복을 누리게 되시길 바랍니다.
“주께서는 무소불능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욥이 고난을 통해 직접 눈으로 보게 된 하나님은 당신의 권능을 사용하셔서 당신의 뜻대로 온 땅을 섭리해가시는 분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은 누구도 방해할 수 없음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욥은 고난 중에 잠시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섭리를 잊고 자신의 의를 들이대며 주님께 따진 자신의 무지한 행동을 회개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주신 말씀처럼,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 생각과 다르고 하나님의 길도 우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 보다 높음 같이 하나님의 길은 우리 길 보다 높으며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 생각 보다 높습니다. 또한 무지한 우리들이 하나님의 생각과 길을 이해 못해서 불안해 할까봐, 바울을 통해 이런 말씀도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 특히 욥과 같은 고통 중에 있다하더라도, 그 속에서도 선을 이루고 계신 하나님을 믿고 안심하라시는 겁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우리에게 큰 힘이 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는 삶으로 세워줍니다.
지난한 고통과 황홀한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욥이 얻은 이 귀한 교훈을 성경을 통해 들을 수 있어서 참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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