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솔길 의자에서

뭉클한 이야기 267

채우미 2025. 12. 26. 00:23

 

 

초대 교회 당시의 역사를 기록한 문서들을 보면 교회 성도들의 기이한 행동들, 즉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이해하기 힘든 행동들이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첫번째 기이한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선 로마 도시의 삶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로마 시대의 도시 생활은 상류층이나 귀족들에게나 화려했지 대부분의 서민들은 형편없는 환경에서 살았습니다. 지금까지 흔적을 볼 수 있는 유적들, 그러니까 당시 튼튼한 돌로 지어서 그 잔해들이 지금도 남아있는 유적들은 다 상류층이 누리던 것들이라고 보면 됩니다.

2013년 초대 교회들의 흔적들을 견학하기 위해 터키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에베소에 갔을 때, 골격이 잘 보전되어 있는 도서관 건물을 보고 혹시 이곳이 두란노 서원이냐고 안내원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안내원은 아무 것도 없는 빈 공간을 가르키며 그곳이 서민들이 살던 곳인데 그 안 어딘가에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더라구요. 바울이 rent해서 매일 성경을 가리키던 두란노 서원은 서민들이 몰려있던 장소에 있었던 겁니다.

 

기록을 보면 고대 로마 도시 안 서민들이 몰려 살던 곳은 오늘 날 개발 도상국의 빈민가와 비슷했습니다. 인술라라고 부르는 주거용 건물은 다층 주택이자 다세대 주택이었습니다. 도시에 인구가 갑자기 몰려들자 폭증하는 수요를 수용하기 위해 기존의 건물 위에 한 층 한 층 쌓을 수 있을 때까지 덧쌓아 올린겁니다. 그러니 그런 건물들이 지금까지 남아있을 수가 없는 겁니다. 미로와 같은 길은 그 폭이 아주 좁았고, 양쪽으로 꽉 들어선 건물들 때문에 늘 어두컴컴했습니다. 물은 지저분한 공동 우물에서 길어다 먹어야했고, 하수 시설도 없어서 오물은 공동 쓰레기 장에 갖다 버려야했지만, 게으르고 예의 없는 도시인들은 오물을 자기 발코니에서 길거리로 쏟아붓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니 거리마다 지저분한 냄새로 가득했고 위생은 엉망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몰려있고 위생이 엉망이다보니 전염병이 창궐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한 번 전염병이 돌면 로마 인구의 3분의 1 또는 4분의 1이 죽었다고 합니다. 한 번은 로마 시에서만 하루에 5,000여명이 생명을 잃었을다는 기록도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전염병이 돌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목숨을 건지기 위해 살던 집과 심지어 죽어가는 가족과 친구들을 버리고 정신없이 도시를 빠져나갔습니다. 병자들을 돌보아야 할 의사들도 달아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교회 성도들은 떠나지 않았습니다. 남아있는 기록들은 교인들이 도시에 남아서 한 일들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성도들은 자신의 위험을 생각하지 않고 병든 자를 찾아가 정성껏 섬겼고 그들이 낫도록 그리스도 안에서 돌보아주었다.” “보살피던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정성스럽게 펴주었고, 그곁을 떠나지 않았으며, 시신을 안아주었으며, 시신을 씻기고 입혀서 장례를 준비했다.” “간호하고 치료해주던 사람들은 회복되었으나, 정작 자신은 그 병에 전염되어 죽은 성도들도 많았다.”

율리아누스 황제는 교인들의 이런 행동을 지켜보면서 로마 신을 섬기는 갈라디아의 한 제사장에게 이렇게 불평했다고 합니다. “불경한 갈릴리 사람들은 자기네 가난한 자들 뿐 아니라 우리네 가난한 자들까지 돌본다. 그런데 우리네 가난한 자들은 우리에게서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절대로 하지 않을 일을 교회 성도들은 손수 팔을 걷어부치고 기쁨으로 감당한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 그렇게 살아간 교회 성도들을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른 겁니다.

 

성도들의 선행은 이 뿐이 아니었습니다. 로마 시대엔 남자 인구가 훨씬 많았습니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로마에는 여자 100명당 남자가 131명이었다고 합니다. 그 시대에 특별히 남자 아이들이 많이 태어나서가 아닙니다. 여아들이 태어나면 버리고 죽이는 일이 사회적으로 만연했기 때문입니다. 부모들은 원하지 않는 여아나 장애를 가진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양심에 가책없이 쓰레기 더미에 버리거나 강물에 던져버린 겁니다. 기원전 1세기쯤, 일을 위해 집을 떠나 도시 생활을 하고 있는 한 노동자가 집에 있는 임신한 아내에게 쓴 편지가 발견되었는데 이런 내용이 적혀있습니다.

나는 알렉산드리아에 있소. (중략) 우리 아들을 잘 보살펴주기 바라오. 급여를 받는 즉시 당신에게 보내겠소. 내가 돌아가기 전에 아이를 낳는다면, 아들이면 두고 딸이면 버리시오.”

 

그 당시 딸 아이에 대한 사회적 통념을 잘 보여주는 기록은 이뿐이 아닙니다. 초대 교부 중 한 사람인 터툴리아누스는 이런 기록을 남겼습니다.

유아 살해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는데도 너무 빈번하게 일어난다. 다른 사람들이 뻔히 알 정도로 이 법을 어겼어도 다른 법을 어길 때와 달리 처벌 받지 않을 때가 많고 심지어 안전하기까지 하다. 당신들은 거룩한 의식을 빌미로 유아를 죽이거나 신에게 바치는 제물로 유아를 죽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더 잔인한 방법으로 유아를 죽인다. 당신들은 유아를 추위와 굷주림과 맹수에게 내어주거나 물에 던져 더 서서히 죽임으로써 제거한다.”

 

그러나 교회는 달랐습니다. 교회 안에 낙태와 살인을 금했고, 성도들은 돌아다니며 아이들을 구할 수 있는 한 구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똥 무더기에서라는 이름을 가진 성도가 있었는데, 말 그대로 똥 무더기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습니다. 따라서 바깥 세상과는 달리 교회에서는 여성의 비율이 상당히 높았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는 거룩해야 합니다. 거룩하다는 말은 구별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구별되어야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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