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아침에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그 이후의 시간 대부분을 ‘소년이 온다‘를 읽는데 사용했다.
어제보다는 약간 가라앉았지만 그래도 가슴이 먹먹하다.
슬픔, 분노, 안타까움, 미안함이 나를 먹먹하게 만드는 주 감정들이다.
분노. 사람이 다른 사람을 저렇게까지 모질 대할 수 있는 걸까? 도대체 인간은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단 말인가?
슬픔. 5.18 사건 때,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싸우다 생명을 잃고 만 수 많은 사람들이 슬펐다. 싸운 것도 아니었다. 그저 존엄을 온 땅에 선포하기 위한 비폭력에 가까운 데모라고 해야할까? 사랑하는 사람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한 이유로 떠나 보내고 슬퍼하는 가족과 친지들의 고통이 내게도 고스란히 다가왔다.
안타까움. 그 사건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비극적인 삶이 안타까웠다. 악몽 보다 더 악몽 같았던 당시의 상황도 그렇거니와, 자기만 숨을 쉬고 살아가고 있다는 자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들의 삶을 지켜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그들이 빛으로 나오는 걸 가로 막고 있는 철장 중 하나라도 들어내주고 싶은 마음이 자꾸자꾸 들었다.
미안함. 이 비극을 자세히 모르고, 깊은 관심도 주지 못한 그동안의 무심함이 너무 미안했다.
한 강 작가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한 문장도 덜어낼 수 없을 정도로, 책 전체가 완벽한 논리와 감정 선으로 촘촘하게 묶여서 완전한 통합, 마치 생명체처럼 하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 참 신비하기만 했고, 그런 기록이기에 읽는 자에게 이토록 무한에 가까운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한 작가 때문에 5.18 그날 떠나간 사람들, 그들을 잃은 사람들, 그리고 그날 생존의 자리로 조용히 밀려난 사람들이 다시 생생하게 우리 마음 속에서 다시 살아났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래서 늦었지만 그들과 함께 온전히 슬퍼하고 분노할 수 있게 해준 작가가 참 고마웠다. 작가 아니면 누구도 감히 해낼 수 없는 위대한 작업을 해낸 거다. 그에 비하면 노벨 상이 오히려 적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나님, 한 강 작가에게 재능 주셔서 감사하고,
작가가 그 재능을 부지런하게 사용해서 위대한 작품을 쓰게 하신 것도 감사하고,
그의 작품을 통해 그 날 그 현장에 있던자들과 함께 하며 같이 분노하고 슬퍼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 주님께서 왜 이 땅에 오셨는지를 더 뚜렷하게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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