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솔길 의자에서

뭉클한 이야기 294

채우미 2026. 1. 23. 04:40

 

 

하나님께서 주신 목회 소명에 순종해서 20001월 무디 신학교에 입학해 열심히 공부하며 사역을 준비했습니다. 그렇게 3년 반을 보내고, 2003년 졸업할 때가 됐는데 사역 자리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이민 1세를 향한 목회의 마음을 주셨는데, 파트 타임이든 풀 타임이든 가서 목회 수업을 받을 수 있는 교회가 없는 겁니다.

 

할 수 없이 졸업 후에는 무디에서 같이 공부한 친구 목사님이 파트 타임으로 사역하는 교회에 그냥 평신도처럼 출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새벽마다 교회에 가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불러 주신 하나님께서 떼를 쓰다시피 기도한 겁니다. 기도하는 동안 마음에 평강을 주셔서 부르신 소명에 대한 의심은 없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때 신문 광고란을 참 많이 봤습니다. 물론 교역자를 찾는 광고들은 종종 있었는데, 다 유치부, 유년부 또는 중고등부를 담당할 전도사를 찾거나 담임 목사를 찾는 광고들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사역 자리를 찾기 시작한 때부터 8개월의 시간이 흘렀을 때였습니다.

 

신문 광고란에서 한국어 회중을 위한 부교역자를 뽑는다는 청빙 광고를 본 겁니다. 처음이었습니다. 시카고 지역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규모가 큰 교회에서 낸 광고였습니다. 쿵쿵 거리던 가슴이 자격 조건을 보고는 급실망하고 말았습니다. 목사 안수를 받고 3년 이상 사역을 한 경험이 있는 목회자를 뽑는다는 겁니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나 하는 생각에 좀 우울해졌습니다.

 

그런데 그날 오후 전화 한통을 받았습니다. LG에 엔지니어로 근무하다가 이민 오신 분으로, 시카고 지사에서 근무할 때 제가 다루던 수출 제품의 엔지니어링 파트를 맡아 외주 형식으로 돕던 분이었습니다. 지금은 천국에 계시지만, 정현구 장로님은 40대 초반에 이미 장로로 선출될 정도로 신앙심도 깊은 분이었습니다. 함께 바이어 사무실을 방문할 때면 오가는 동안 차 안에서, 또는 식사를 같이 하면서 신앙 이야기를 참 많이 나누었습니다. 그러다 저는 그분이 장로로 선출된 그 해에 근무지를 뉴저지로 옮기게 되었고, 그후 8년 동안 연락이 끊긴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장로님이 8년만에 전화를 주신 겁니다.

 

반가운 마음에 그간 안부를 나누던 중, 장로님이 불쑥 하나님 부르심을 받고 신학을 공부하고 계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시더라구요. 그러더니 장로님 교회에서 한국어 회중 부교역자를 찾고 있는데 지원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물으시는 겁니다. 장로님이 미국에 오신 후 지금까지 섬겨온 교회가 청빙 광고를 낸 바로 그 교회였거든요. 그래서 전 자격이 되질 않는다고 솔직히 말씀드렸습니다. 대화가 거기서 끝일 줄 알았는데, 장로님은 일주일 후에 전화를 다시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어차피 안 될 걸 알았기 때문에 큰 기대 없이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신문 광고를 보니, 그 교회의 청빙 광고 내용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청빙 숫자가 한 사람에서 두 사람으로 바뀌었고, 자격 조건 란에도 신학교에서 MDiv.를 전공하고 졸업한 전도사를 함께 뽑는다고 되어있는 겁니다. 그것도 풀 타임으로 말입니다. 제 가슴은 다시 쿵쿵 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날 장로님이 다시 전화를 주셨고 전 8개월만에 사역지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가서 보니 정말 목회 훈련을 받기에 아주 완벽한 교회였습니다. 두란노에 오기 두 해 전부터는, 담임 목사님이 은퇴를 앞두고 그동안 사용하지 않은 안식년 휴가를 길게 내셔서, 함께 청빙 받았던 목사님과 구역을 반으로 나누어 담임 목회하듯이 교회를 섬길 수 있었습니다. 제게 목회의 소명을 주신 하나님께서 3년 반 신학교 다닌 것 외엔 사역의 경험이 거의 없는 제게 꼭 맞는 교회를 찾아 인도해주신 겁니다. 이후 목회를 하는 동안 어려운 일이 생기면, 이때의 경험을 떠올리곤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기적과 같은 사건을 통해서, 당신께서 저를 목회의 자리로 불러 주신 게 맞다는 걸 아주 분명하게 확인시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소명을 주신 후, 그저 팔짱을 끼고 방관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맡겨 주신 소명을 감당하는 제자들과 늘 함께 하셔서 지켜 보호해주시고, 또한 그 소명을 다 이룰 때까지 제자들과 함께 일하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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