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rances Willard는 19세기 말 기독교 여성 운동가로 유명한 인물입니다.
Frances의 원래 목표는 훌륭한 학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고, 결국 1871년, 서른 둘 젊은 나이에 에반스톤 College for Lady’s의 초대 총장이 됩니다. 2년 후 이 대학교가 Northwestern 대학에 합병되자 the women’s college of Northwestern의 학장으로 임명됩니다. Frances 앞에는 학자로서의 대로가 열린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선 Frances에게 다른 비전을 보여주셨습니다. 알콜 중독으로 망가진 가정과 가정 폭력 때문에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여성과 아이들의 현실을 보여주신 겁니다. 당시 시카고에는 일거리를 찾아 유럽에서 온 이민자들로 넘쳐났고, 그들에게 동네 쌀롱은 생활의 중심지였습니다. 당시 동네 쌀롱은 술만 파는 것이 아니라 이민자들에게 일자리 정보를 제공하고 일하고 받은 수표를 현금으로 바꿔주고 돈도 빌려주고 심지어 문맹자가 대부분인 이민자들을 위해 편지까지 대신 써주는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동네 쌀롱마다 노동자 이민자들로 넘쳐났고 자연 술 소비도 들어나 알콜 중독자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가정 폭력이 늘어나고 여성들과 아이들의 삶은 점점 더 비참해지기 시작한 겁니다.
자신의 목표와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 두 길 앞에서 기도하던 Frances는 하나님께 순종하기로 결심합니다. 학교를 그만 둔 Frances는 하나님께서 만나게 하신 동역자들과 1874년 Woman’s Christian Temperance Union (기독교 여성 금주운동 연합)을 조직하고 1879년 2대 회장에 취임해서 이땅에서의 삶을 마칠 때까지 이 단체를 통해 미국내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사역을 활발하게 펼쳐나갔습니다.
하나님께선 순종한 그녀를 통해 많은 일을 이루셨습니다. 금주와 가정 회복 운동이 결실을 맺었고, 나아가 사회 혁신 운동, 즉 여성 참정권 확대 운동, 하루 8시간 근무 법제화 운동, 일터에서 여성과 어린이를 보호하는 법 제정, 교도소 개혁 등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또한 전국적으로 학대받는 여성들과 아이들을 위한 쉘터와 여성근로자들을 위한 거주시설 그리고 무료 유치원들을 세웠습니다. 하나님 뜻에 순종한 Frances를 사용하셔서 주님께서 긍휼히 여기시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보호막을 하나하나 세워가신 겁니다.
주님의 제자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 즉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소명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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