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달쯤 전, 전 신앙의 고전을 읽다가 문득 제 기도 생활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A.W. 토저 목사님의 “The Pursuit of God”, 제목을 궂이 번역하자면 “하나님을 갈망하라”가 좋을 것 같은데, 이 책을 읽는데 이런 구절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God and”의 신앙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는 문장이었습니다.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할 수 있어야 하는데, 성도들은 자꾸 하나님과 그 어떤 것을 함께 추구한다는 겁니다. 기도할 때도 그렇다는 겁니다. 하나님 보다는 다른 것들을 더 큰 기도 제목으로 삼아 기도함으로 점점 영성을 잃어버린다는 겁니다. 오늘 말씀의 표현을 빌면 기도는 하는데 하나님과의 교제가 일어나질 않는 겁니다.
큰 도전을 받고 제 기도 시간을 성찰해보았습니다. 새벽 예배 후 갖는 기도 시간이 가장 깊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이라, 그때 드리는 기도의 내용을 가만히 성찰해보았습니다. 기도의 내용이 주로 비지니스 타잎이었습니다. 두란노 식구들과 우리 가정 그리고 가까운 지인들의 이름들을 불러가며 중보 기도하고, 교회의 사역들을 떠올리며 기도하고, 선교지와 선교사님들을 떠올리며 기도하고, 시카고와 미국의 영적 부흥을 위해 기도하고, 조국의 통일과 영적 부흥을 위해 기도하고, 전도 대상자들을 위해 기도하고…기도 내용의 대부분이 중보 기도라는 걸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중보 기도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가 턱없이 부족한 겁니다. 하나님과 일대일로 마주하는 기도 시간, 그 귀한 시간의 대부분을 비지니스 만을 위해 사용해왔다는 것이 너무 후회가 됐습니다.
그래서 한달 쯤 전부터 하루를 기도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불도 켜지 않은 거실에 무릎 꿇고 앉아, 오직 하나님의 임재만을 위해 기도하는 겁니다. God and에서 and는 떼어내 버리고 오직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만을 위해 기도합니다. 처음엔 잘 안 됩니다. 사역에 필요한 기도들이 불쑥불쑥 그 공간을 뚫고 침입해오기 때문입니다. 그 생각들을 밀쳐내면서 깊이 깊이 전진하다보면 하나님께서 계신 곳에 닿곤 합니다. 매번 성공하는 건 아닙니다. 하나님 아닌 and, 다른 것들만 기도하다가 끝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빈도가 점점 높아집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면 하나님께서 아무 말씀하지 않으셔도 얼마나 그 시간이 황홀한지 모릅니다. 곁에 계신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평강을 즐기다보면 아주 늦은 시간까지 기도에 잠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시간이 얼마나 좋은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기도를 통해 오직 하나님과만 일대일로 교제하는 시간을 갖게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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