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디가 다니던 교회에서 함께 주일 학교를 맡고 있던 짐이라는 교사가 있었습니다. 백인인 짐이 맡고 있는 반의 아이들은 대부분이 African-American 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짐은 아이들을 진실된 사랑으로 가르치고 인도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짐의 반 아이들은 영적으로 잘 성장했고 모두가 한 식구처럼 화평하게 지냈습니다. 무디는 그런 모습이 부러웠습니다. 자기도 자기 반 아이들을 좋아하는데 짐의 반과 비교하면 뭔가가 부족한 걸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런 짐이 폐결핵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당시는 페니실린이 발견되기 훨씬 전이라 폐결핵은 치료하기가 아주 어려운 치명적인 병이었습니다. 담당 의사는 당장 휴양지로 가서 요양을 해야한다고 말했습니다. 아직 초기이긴 하지만 타이밍을 놓치면 위험해지고, 병세가 심해지면 주변 사람들에게 옮길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전염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짐은 서둘러 요양원으로 가기 위해 준비했습니다. 떠나기 며칠 전 짐은 무디를 찾아왔습니다. “부탁이 하나 있는데, 마지막으로 주일학교 아이들을 찾아가 만나고 싶은데 좀 도와줄 수 있겠나? 심방을 도와 줄 성도를 위해 기도하는데 무디 자네가 자꾸 떠올라서 이렇게 부탁하게 되었네.”
그 힘든 몸으로 마지막 심방을 가겠다는데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심방을 따라나서보니 짐의 반 아이들은 다 빈민가에 살고 있었습니다. 짐은 한 집 한 집 방문할 때마다 아이들을 꼭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짐의 그 간절한 기도에서 무디는 아이들을 향한 진짜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무디는 짐의 기도를 통해 짐이 평소 반 아이들을 위해서 끊임없이 진실되게 기도해왔음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짐의 기도가 끝나면 아이들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도 선생님이 빨리 치유되도록 하나님께 기도할께요.” 그때 무디는 자기의 주일 학교 사역에서 무엇이 부족한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짐과 반의 아이들은 서로를 위한 진실된 기도로 하나로 묶여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무디와 자기 반 아이들은 무디가 구두를 판매하면서 배운 스킬과 재미로 연결되어 있었던 겁니다. 무디는 갑자기 부끄러워졌습니다.
병 때문에 짐은 몇 집 못가서 탈진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짐이 말했습니다. “무디, 자네가 날 대신해서 우리 아이들을 위해 기도해주면 좋겠네.” 무디는 잠시 머뭇거렸습니다. 자기는 지금까지 자기 반 아이들을 위해 짐처럼 진실되게 기도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없었던 겁니다. 그렇다고 거절할 수도 없었습니다. 마차를 모는 동안 무디는 아이들을 향한 저 짐의 마음을 자신에게도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선 무디의 기도에 응답해주셨습니다. 기도하기 위해 첫번째 아이를 안는데, 그 아이의 영혼이 너무나 불쌍하고 사랑스러운 겁니다. 그래서 무디도 그 아이의 영혼을 위해 눈물 흘리며 간절히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무디는 이 사건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을 기도의 사람으로 만들어준 결정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 이후, 무디는 자신이 섬기는 교회와 단체에 속한 멤버들을 위해, 그리고 집회 일정이 잡히면 그 집회를 통해 만나게 될 사람들을 위해 간절하게 중보 기도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디의 중보 기도는 부흥을 낳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깊은 영성을 지닌 성도는 누군가의 삶과 영혼을 위해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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