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회선교단과 24시간 기도하는 열방기도 센터의 대표인 김용의 선교사님은 주님을 만난 후, 그 은혜가 감사해서 선교사로 헌신했습니다. 5 자녀를 두었는데, 모두 다 선교사로 헌신하도록 철저히 교육했습니다. 얼마나 철저한지 막내의 이름은 아예 선교라고 지었을 정도였습니다. 아무튼 기도와 교육 덕분에 5 자녀가 모두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온 가족이 선교사이다 보니 한 자리에 모일 기회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해엔 어떻게 서로의 일정이 맞아 떨어져서, 김 선교사님 생일에 다 모일 수 있게 되었답니다. 5 자녀는 주머니를 털어서 돈을 모아 케잌을 사왔고, 식구들이 다 모여 조촐한 생일 파티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자녀들이 사온 케잌이 얼마나 작든지 선교사님 나이대로 초를 꽂고 나니 빈자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더랍니다. 순회선교단의 구호가 무소유 선교이지라, 선교사님은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는 자녀들이 대견하기만 한데, 사모님의 마음은 달랐던 모양입니다. 초라한 케잌을 받아야 하는 남편도 안됐고, 주머니를 털어봐야 가진 것이 그것밖에 안되는 자녀들이 불쌍했는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 겁니다.
갑자기 우울해진 분위기를 바꾸어보려고, 아이들이 돌아가며 생일 축하 메쎄지를 한 마디씩 했습니다. 마지막 차례가 된 장남 찬송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아버지, 제가 아프리카에서 사역할 때 저를 방문하셨던 것 기억나세요? 그때 아버지가 떠나시면서 카드를 써주셨는데 기억하세요?” 그 말 한 마디에 그 때 일이 떠올랐습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 중에 하나인 기니비사우에서 큰 아들이 선교하고 있을 때,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가난한 지, 전기도 없었고, 수도도 없었고, 학교도 없는 나라였습니다. 그곳에서 한 부족에게 가서 그 청년들을 데리고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상황이나 환경에서든 잘 견뎌내거라” 하고 파송했지만, 막상 와서 보니 마음이 불편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덥기는 어찌나 덥던지 밤에 잠을 못이룰 정도였고,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서인지 10kg아니 빠진 아들에 대한 걱정 때문에 더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떠나기 전날까지 선교사님의 마음 속에서 떠나지 않던 생각은 ‘이런 데서 썪기엔 우리 아들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떠나기 전날 밤, 아들을 이곳에 두고 떠나는 것이 참 마음 아팠지만, 마음을 정리하고 아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쪽지에 몇 자 적어주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하지만 그 내용까진 기억할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카드를 써준 것은 기억나는데, 뭐라고 썼는지는 생각이 안나네.”
그러자 아들이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써 주신 그 카드를 사역하는 내내 제 벽에 붙여놓고 힘들 때마다 일고 또 읽었어요. 특별히 맨 마지막에 쓰신 글은 늘 제게 도전이 되었어요. 아버지께서 이렇게 쓰셨어요. ‘우리 땅끝에서 죽어 하늘 한복판에서 만나자.’ 전 그날 쪽지를 읽으며 하나님께 기도드렸고, 아버지의 그 고백을 제 가슴에 심었어요. 그래서 제 다음 사역지는 이 세상의 땅끝이라고 불리는 나라로 정했어요. 아버지 훌륭한 믿음의 선배가 되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 땅끝에서 죽어 하늘 한복판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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