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ohn Woolman은 퀘이커 교인이었습니다. 18세기 중엽, 재단사로 살아가던 존은 흑인 노예들을 보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성경 말씀을 어기는 행위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퀘이커 교인들이 흑인을 노예로 부리고 있었던 겁니다. 이 문제를 교단에 제기했지만 전체 회의에서 부결되고 말았습니다. 어떤 안건이든 만장일치가 되어야만 통과되는 교단의 정책 때문이었습니다.
존은 이런 상황 속에서 자기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갈등과 전쟁을 수단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자기로 인해 교단이 분열되고 어려움을 겪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겁니다. 동시에 형제들의 입장도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오랫동안 누려왔던 노예 제도의 편리함을 하루 아침에 포기하지 못하는 그들의 형편을 고려한 겁니다. 그렇다고 흑인들을 돌아보는 마음을 포기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존은 배려와 이해의 마음 위에서 하나님 말씀에 기초한 자신의 뜻을 조금씩 이루어 나갔습니다.
존은 생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13개주에 흩어져 살고 있던 퀘이커 형제들의 집과 사업장을 부지런히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일대일로 노예 제도의 부당함을 두고 충분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들에게 마음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게 여행하는 동안 존은 자신의 믿음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결코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늘 염색하지 않은 흰옷을 입었습니다. 당시 염색 공장들은 다 흑인 노예의 노동력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방문한 집에서 흑인 노예가 만들고 서브하는 음식을 대접하면 금식 중이라고 말하고 먹지 않았습니다. 부지중에 흑인 노예의 도움을 받았다면, 남 몰래 그 흑인을 만나 사례를 했습니다.
생업을 뒤로 미루고 그 힘든 여행을 끊임없이 다니며 노예 제도의 부당함을 설득하는 열정과 실제의 삶에서도 흑인에 대한 사랑을 철저히 실천하는 진실함은 형제들의 마음을 녹이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집과 사업장에서 부리던 흑인 노예들에게 자유를 주기 시작한 겁니다.
흑인 노예와 교단 형제들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존의 조용한 개혁 운동은 18년이나 계속되었고, 그 열매로 1783년 퀘이커 교단은 미국 의회에 노예제 폐지를 요구하는 안을 정식 제출했습니다. 동시에 노예 해방 운동을 가장 먼저 가장 적극적으로 펼친 교단이 되었습니다. 이해와 배려를 기초로 한 존의 개혁 운동은 오랜 시간이 결렸지만, 교단의 갈등없이 더 완전한 결과를 낼 수 있었던 겁니다.
경쟁이 치열한 환경 속에서, 나 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또한 남을 더 배려하는 삶을 산다는 건 참 어렵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선 우리들이 그렇게 살길 원하십니다.
'오솔길 의자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뭉클한 이야기 292 (8) | 2026.01.20 |
|---|---|
| 뭉클한 이야기 291 (2) | 2026.01.20 |
| 뭉클한 이야기 289 (5) | 2026.01.18 |
| 뭉클한 이야기 288 (5) | 2026.01.17 |
| 뭉클한 이야기 287 (3) | 2026.0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