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간 호수가를 산책하고 주차장으로 이어진 경사로를 올라오던 중이었습니다. 방금 전 눈과 마음에 담아둔 풍경, 파스텔 색감의 너른 하늘을 다 끌어안고 나른하게 누워있던 호수 풍경을 막 ‘평화’라는 단어로 레이블링하고 있던 순간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뭔가가 날아와 머리를 치고 지나갔습니다. 깜짝 놀라서 주위를 둘러보니 새 한 마리가 근처 나무에 막 내려 앉고 있었습니다. 몸 전체가 까맣고 목부위만 빨간 아주 작은 녀석이었습니다. 막 머리를 맞은 터라 놈의 눈이 절 노려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갑자기 몸이 오싹해졌습니다. 함께 산책하고 있던 성도님의 설명을 듣고나서야 녀석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근처에 새끼가 있는 모양입니다. 새끼들이 있는 둥지에서 우리를 멀리 쫓아보내려고 위협을 가하고 있는 겁니다.” 경사로를 벗어날 때까지 두 번 더 공격을 받았습니다. 또 그러면 혼내겠다는 제스처를 취하려다가 그만두었습니다. 녀석이 보여준 뜨거운 모성애 (또는 부성애) 때문입니다. 문득 한 달쯤 전에 경험한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저녁 무렵으로 기억합니다. 산책을 하던 중 하늘에서 매를 발견했습니다. 매는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는지라 그 유연한 몸짓을 감상하기 위해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종종 걸음치듯 날개를 파닥거리며 낮게 날아다니는 작은 새완 다르게 두 개의 큰 날개를 맘껏 펼친 채 드넓은 하늘을 바다 삼아 유영하는 매의 자태는 볼 때마다 감탄을 자아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오늘은 늘 보던 그런 광경이 아니었습니다. 매 옆에서 점 하나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 점이 매에게 빠르게 접근하자 매가 가던 방향을 바꿉니다. 그러다가 매가 다시 큰 턴을 해서 원래 방향으로 돌아오려고하면 그 작은 점이 다시 매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듭니다. 그러자 매는 다시 방향을 바꿉니다. 신기해서 작은 점을 유심히 보니 새였습니다. 매의 몸집에 비하면 10분의 1도 안 되보이는 놈이 오히려 매를 공격하고 있는 겁니다. 매는 그런 작은 새를 잡아 먹고 생존합니다. 책에서 배운 먹이사슬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매가 작은 새의 공격을 피해다니고 있습니다. 그러다 지쳤는지 풀밭에 내려앉습니다. 놓칠새라 가까이 다가가는데 인기척을 느꼈는지 매가 힘차게 발을 구르더니 공중으로 솟구쳐올랐다가 잠시 후 시야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매가 사라진 후에도 한동안 공중을 날아다니던 작은 새는 매가 다시 돌아올 기미가 없자 그제서야 풀숲으로 들어갑니다. 이 장면을 설명할 유일한 방법은 모성애( 또는 부성애) 뿐이었습니다. 혼자 마음에 담고 있기엔 아까운 광경이라, 저만치 앞서 간 아내에게 달려가서 “당신도 봤아야 했는데…” 하며 목격담을 들려주었습니다.
뜻밖의 장소에서 모성애(또는 부성애)의 위대함을 한 번은 눈으로 또 한 번은 몸으로 직접 체험한 셈입니다. 이들 경험이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생각나게 합니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자격이라고는 전혀 없는 우리를 자녀로 삼기 위해 하나밖에 없는 아들 예수의 생명을 아낌없이 십자가 위에서 내어주신 하나님. 구원 후에도 우리 안에 오셔서 천국에 도착할 때까지 인도해주시고 지켜주시고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사랑.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고 계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 로마서 8장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우리 영혼은 늘 잔잔한 호수처럼 평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