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클한 이야기 39

영국의 헨리 8세는 자신의 결혼 문제가 로마 교화청으로부터 거부되자, 로마 카톨릭과의 관계를 끊어버리고, 당시 종교 개혁 사상을 반영한 영국 성공회를 조직하게 됩니다. 하지만 성공회 안에는 여전히 로마 카톨릭의 잔재가 남아 있었습니다. 성인숭배, 연옥에 대한 믿음 등이 그 예입니다.
철저한 프로테스탄트이자 성공회 목사였던 휴 라티머는 이에 반대했고, 결국 교회로부터 이단으로 몰리고 말았습니다. 그의 이단을 정죄하는 재판을 열었지만, 그 재판정에서 그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천국과 지옥만 믿는다, 성인들의 숭배는 또 다른 우상 숭배임을 강력히 주장한 겁니다. 다행히 당시 총리였던 토마스 크롬웰의 도움으로 어려움을 넘기게 됩니다.
헨리 8세가 죽고 뒤이어 왕이 된 헨리 6세는 영국의 성공회를 프로테스탄트 정신으로 무장하려고 노력합니다. 이때 휴 라티머는 성공회의 개혁 운동에 가담하여 큰 공로를 세우게 됩니다. 그러나 헨리 6세가 즉위한 지 5년만에 폐결핵으로 죽고나자, 상황은 뒤바뀌고 말았습니다. 철저한 로마 카톨릭 옹호자인 메리가 뒤이어 왕의 자리에 오른 겁니다.
그녀는 즉위하자마자 영국의 국교를 로마 카톨릭으로 선포했고, 자신의 뜻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가차없이 처형하고 말았습니다. 철저한 종교 개혁가인 휴 라티머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다시 이단으로 몰려 재판정에 서게 되었고, 이번에는 ‘베드로가 로마 카톨릭의 일대 교황임을 인정하라, 그러면 살려주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화형에 처할 것이다’라고 협박했습니다.
하지만 라티머는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1555년 10월 16일 그는 그의 동료 리들리와 화형장에 서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되어 자신의 발 밑에 쌓인 나무더미에 불이 붙여졌을 때, 라티머는 평안한 얼굴로 주위 사람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영국에 촛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 불은 결코 꺼지지 않을 것입니다.” 실제로 그가 몸을 살라 치운 불꽃은 지금까지도 꺼지지 않고 교회들에게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라티머는 원래부터가 종교개혁가 즉 프로테스탄트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촉망받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신부였습니다. 특히 영국에서 가장 정직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었고, 동시에 그의 힘있고 감동을 주는 설교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한 사람을 만난 겁니다.
그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저 그를 아는 사람들이 리틀 빌니라고 불러주는 그런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보통사람에 불과하던 빌니는 어느 날 종교개혁가 에라스무스의 책을 읽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섬기고 난 후, 그의 삶은 예수님에 대한 사랑으로 뜨겁게 달아올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귀한 소식을 좀 더 영향력있는 사람에게 전해서, 이 복음이 영국 땅에 더 왕성하게 퍼져나가길 원했습니다. 이 기도 제목을 가지고 기도하던 중, 그의 마음 속에 휴 라티머가 떠올랐습니다. 그의 명성과 설교의 능력에 이 귀한 복음이 실린다면 폭발력이 생길거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전하는가가 문제였습니다. 자신은 정말 아무 알아주지 않는 보통사람이었고, 라티머는 가까이 가기도 힘든 높은 지위의 신부였던 겁니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그가 설교하는 성당을 찾아갔습니다. 그의 설교는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복음이 부재했습니다.
설교가 다 끝난 후, 빌니는 주님께서 주신 지혜와 용기를 가지고 설교단을 내려와 자신의 곁을 지나치는 라티머의 옷자락을 잡고 말했습니다. “고해성사할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 고해성사하는 방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시지요? 서로 연결된 방의 한 쪽엔 듣는 신부가, 다른 쪽엔 고해성사하는 사람이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서로 얼굴은 알아볼 수 없고 목소리만 전달되게끔 만들어진 창을 통해 고해성사가 이루어지는 겁니다.
빌니는 고해성사가 아니라 자신의 간증을 시작했습니다. “전 영적으로 깊은 갈증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그 영적을 해갈할 방법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신부님들을 찾아가서 영적 조언을 구했지만, 그분들은 그저 깨어진 물통만 손가락으로 가리킬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에라스무스의 책을 통해 예수님을 만난 순간 그 갈증이 다 해소되고 말았습니다. 지금 전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전 신부님도 그 예수님을 만나시길 원합니다.”
라티머는 황당했을 수도 있습니다. 종교, 성경 하면 자기가 더 대가임에 분명한데, 일개 범인이 와서 자기 앞에서 설교하고 있으니 기가 막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빌니를 변화시킨 성령님께서 라티머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보통 사람 빌니의 믿음을 통해 강하게 역사하셨습니다. 그의 간증이 당시 카톨릭계의 거성이었던 라티머의 가슴을 치고만 겁니다.
라티머는 조용히 자기 방에서 나와 빌니가 있는 방으로 와 그의 곁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예수님을 영접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연약한 한 사람의 믿음을 통해 영국 교회의 개혁에 크게 쓰임받은 위대한 종교개혁자가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