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커리커처

고난 주간 묵상 4

채우미 2025. 4. 18. 01:42
마태복음 27:46
주님께서 4 번 째 말씀을 주신 때는 십자가에 달리신지 이미 6시간이 지난 때였습니다. 고통 중에 있는 당자자에게, 시간은 아주 느리게 흘러갑니다. 십자가에서의 6시간은 100년과도 같았을 겁니다. 그리고 대못이 박힌 손과 발에서 6시간 동안 피가 흘렀다고 생각해보세요. 의식도 거의 사라져가고, 이젠 오감이 마비되어 고통도 느끼지 못할 지경이셨을 겁니다. 주님의 생명은 이제 경각에 달려있는 겁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담고 있는 참 뜻을 알고 나면, 그런 상황 속에서도, 우리 인간들에게 왜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계신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이 문장을 번역하면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입니다. 마치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는 것 같은 이 말씀이 어떻게 십자가의 의미를 전하는 소통의 도구란 말인가 하고 의아해 하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 말씀을 처음 하신 것이 아니라, 이미 성경 안에 등장하는 표현이라는 걸 알면, 그때부터 묵상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바로 시편 22편 1절이 이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더욱이 평소 주님께서 아버지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 하나님 앞에서 늘 겸손하고 하나님께 늘 영광을 올려드리던 모습을 떠올리면, 오늘 이 말씀은 원망의 말씀이 아니라는 걸 금방 알게 됩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왜 이 상황에서 이 말씀을 인용하셨을까?” 그 답을 찾기 위해선 시편 22편 전체를 읽어보아야 합니다.
시편 22편은 장차 오실 메시야, 그리스도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22편의 전반부를 읽어보면 깜짝 놀라게 됩니다. 약 1,000전쯤 다윗이 쓴 시편인데, 그 내용이 마치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어가는 장면을 직접 보고 스케치한 것 같기 때문입니다. 과연 그런지 몇 구절만 인용해보겠습니다.
7, 8절 말씀 “나를 보는 자는 다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이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저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저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십자가 주변에서 예수님을 모욕하고 조롱하는 자들의 모습과 같습니다.
16절 말씀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주님의 손발이 못에 찔린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18절 말씀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실제로 로마 병정들이 주님의 옷을 나눠 가졌습니다.
그리고 후반부에서는 메시야가 통치할 나라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때에 모든 나라는 주님 앞에 엎드려 경배할 것이고, 주님을 경배하는 자들은 다 주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찬송을 부르며 지내게 될 것이라고 노래합니다.
이 시편을 쓴 다윗은 메시야가 고난을 통해 이루실 영광을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또한 후손들이 이 놀라운 일을 대대로 전하게 될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그러니까 시편 22편은 1000년 뒤에 오실 예수님을 정확하게 예언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은 십자가 주변의 유대인들과 소통하기 위해 시편 22편의 첫부분을 크게 외치신 겁니다. “얘들아, 이 말을 듣고 시편 22편을 떠올려보거라. 너희들은 시편 22편이 메시야에 대한 약속의 말씀이라는 걸 잘 알고 있지 않느냐? 그 시편의 첫부분을 기억해보거라. 나의 죽어가는 모습을 정확하게 그리고 있지 않느냐? 이 시편은 오늘 너희들을 위한 예언이란다. 너희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내가 메시야라는 걸 쉽게 믿을 수 있도록 배려하신 거야. 그러니 나를 믿고 이 시편 후반부에서 노래하고 있는 나의 나라, 하나님 나라에 들어와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찬송하는 복된 자가 되길 바란다.”
마가복음 1장에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전도라고 직접 말씀하셨는데, 죽음 직전까지도 주님은 온 땅에 복음을 전하신 겁니다. 이 모습이 우리들에게 큰 도전이 됩니다.
주님을 닮아, 우리도 이 땅을 떠나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쓰는 참제자들이 다 되시길 축원합니다.
이 네 번째 말씀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뜻이 담겨 있습니다. 지금 주님은 이 말씀을 통해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아주 분명히 가르쳐주고 계신 겁니다.
주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기 직전에 이상한 자연 현상이 일어납니다. 육시, 지금 시간으로 환산하면 정오를 말합니다. 햇살이 가장 강할 그 시간에 어둠이 임한 겁니다. 그 어두움 속에서 또한 극심한 고통 속에서 3시간을 보내신 주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겁니다. 어둠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인류의 모든 죄를 지고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은 아버지 하나님과의 단절을 경험하신 겁니다. 그때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고 부르짖으신 겁니다. 죄로 인해 아버지와 소통하는 것이 끊어진 그 어둠의 시간이 얼마나 견디기 힘든 것인지를 이 말씀을 통해 보여주신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주님께선 우리들을 향해,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는지를 직접 보여주고 계신 겁니다. 그러니 이 십자가 앞으로 나와 주님을 믿고 너희를 묶고 있는 이 끔찍한 죄의 결박에서 벗어나라고 안타까움으로 외치고 계신 겁니다.
주님의 외침은 우리 구원받은 자도 귀기울여 듣고 가슴에 새겨야 할 말씀입니다. 우리도 죄에서 넘어질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자꾸 넘어지다 보면, 어느 순간 죄의 무게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주님의 말씀을 새기고, 하나님께서 입혀주신 의의 옷을 입고 주님을 만나는 그 순간까지 성령님을 의지해서 죄에서 먼 삶을 살고, 죄에 넘어지면 바로 회개함으로, 하나님께서 입혀 주신 하얀 의의 옷을 늘 깨끗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거룩한 삶으로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복된 삶이 되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