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니카에서...6
포장이 안 된 데다 우기 때마다 내리는 드센 스콜로 지면이 울퉁불퉁해진 길과 길 양편에 잔뜩 들어선 사탕수수들. 열지어 서있는 아주 낡고 오래된 시멘트 건물 몇 동, 그 안에 3평 정도의 넓이를 분양받아 삶을 꾸려가는 가구들. 앞 마당에 놓인 까맣게 그을은 숯불 난로들과 그 위에 얹힌 낡은 그릇들. 마당 곳곳에 박힌 유리 조각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맨발로 뛰노는 헐벗은 아이들과 그 주변을 어슬렁 거리는 몇 마리 안 되는 닭과 돼지들(유일한 재산으로 보이는). 하나같이 얼굴에 굵은 주름이 패여 지쳐보이는 어른들. 마을 가운데 위치한 지은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학교 건물 하나. 기억에 깊이 새겨진 통에 굳이 그때 찍은 사진을 들여다 보지 않아도 쉽게 그려낼 수 있는 밧데이 풍경 입니다.
첫 번 째로 방문한 하비자 밧데이에서 우리를 가장 먼저 맞아 준 건 말을 탄 감시인이었습니다. 밧데이 주인에게 해 되는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주민들과 방문자들을 감시하는 역할을 맡은 그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한동안 우리 주위를 맴돌다간 어느 순간 시야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별 일 없을 거라 판단했던 모양입니다.
이곳으로 오기 전 선교사님으로부터 들은 말이 생각났습니다. “하비자 밧데이엔 이단이 침투해 있습니다. 도미니카인 목사가 주일마다 와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참복음이 아닌 이단 교리를 가르치고 있다고 합니다. 다행히 모이는 인원은 많지 않다고 해요. 목사가 도미니카 사람이어서 그런 모양입니다. 아이티인들은 천성적으로 도미니카인들을 싫어하거든요. 마치 물과 기름과 같은 사이라고 할까요? 아무튼 참복음을 전할 수 있는 아이티 리더를 보내는 일이 시급합니다. 그래서 마니갓 목사와 함께 온 겁니다. 이분 교회에서 30여명의 아이티 리더들이 모여 성경을 연구하고 있거든요.”
동네 뒷편에 나무 기둥이 몇 개 세워져 있는 직사각형 모양의 공터가 있었습니다. 예배 드리기 적당해 보이는 장소였습니다. 주민 몇 사람과 그곳에 서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한 여자분이 자기 집에서 빨간색 플라스틱 의자를 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여자분들도 집에 있는 의자를 가져왔습니다. 잠시 후 공터는 예배당으로 바뀌었습니다. 나이가 지긋한 분이 일어서서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음이 귀에 익은 찬송도 있었고 전혀 낯선 곡도 있었습니다. 주변의 주민들은 손뼉을 치고 추임새를 넣어가며 함께 했습니다. 흑인 영가 풍의 찬송엔 그들이 겪어온 가난과 고통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듯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가사도 모르는 그 찬송이 그들의 간절한 기도로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찬송이 이어진 30분 정도의 시간은 모두에게 그야말로 은혜의 시간이었습니다. 잠간 이야기할 시간이 주어져서 임마누엘을 주제로 그들을 격려했습니다. “하나님은 이곳에 여러분들과 함께 계십니다. 어려울 때마다 그분께 기도하세요. 특히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세요.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자녀들의 미래를 밝게 열어주실 겁니다. 저희 교회도 여러분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즉석 예배를 은혜롭게 드린 후 한 주민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3평 남짓한 방에 들어서니 유일한 가구인 침대 위에 깡마른 몸집의 작은 노인이 앉아있었습니다. “한 달쯤 전 교통 사고를 당했는데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병이 깊습니다. 게다가 연고자가 한 사람도 없어 간호조차 못받고 있어요.” 노인의 눈은 죽음에 대한 공포로 가득했습니다. 뼈가 바로 느껴질 정도로 마른 노인의 몸에 손을 얹고 합심해서 기도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갖길 바라는 마음 간절했습니다. 기도가 끝났을 때 노인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공포와 한이 스미운 노인의 눈이 바로 밧데이의 민낯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