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커리커처

형제들아 구하노니 3

채우미 2023. 12. 1. 23:49

 

 

데살로니가전서 514절 말씀은 교회가 깊은 관심을 가지고 대해야 할 3 부류의 성도들을 보여주고, 그들을 care해야 할 방법을 구체적으로 가르쳐줍니다.

 

먼저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바울의 시대에는 규모 없다는 말을 주로 군대에서 사용했는데, “자기 자리를 벗어나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상관의 명령을 거부하고 자기 자리를 이탈하는 건 중죄입니다. 바울은 이 단어를 사용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성도들을 표현한 후, 교회는 이런 성도들을 바로 세우기 위해 엄중한 경고를 해야 한다고 선포합니다. 죄는 자신뿐 아니라 자신이 속한 공동체까지도 힘들게 만드는 끔찍한 결과를 낳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성전이 리더들과 장사하는 자들의 야합으로 오염된 것을 본 주님은 크게 진노하셨고, 채찍을 만들어 거래하던 짐승들을 다 쫓고, 환전하는 테이블을 엎어 버리셨습니다. 만민이 기도하고 예배 드리는 장소라고 말씀하신 성전이 한낱 장터로 변질된 걸 보고 아주 엄중하게 다루셨던 겁니다.

교회 안에서 죄의 문제를 징계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사람에 시선을 맞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교회는 하나님께 시선을 맞추고 용기를 내야 합니다. 그래서 회개가 일어나고, 그 결과 사단이 죄를 가지고 절대 흔들어댈 수 없는 청정한 교회로 세워야 합니다.

 

두번째 care 대상자는 마음이 약한 자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지친, Burn-out된 성도를 말합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위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위안이라는 헬라어는 가까이라는 단어와 말하다는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지친 자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어깨를 도닥거리며 부드러운 음성으로 격려하고 위로해주라는 겁니다.

한국 교회가 이 부분이 약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변에서 번아웃 되어 쓰러지는 사람을 보면, “아니 그만한 일로 쓰러지면 어떡해? 자 일어나 끝까지 달려야지. 믿음으로 이 고비를 이겨내야지.” 하고 지친 팔을 억지로 끌어당기는 걸 많이 보게 되는 겁니다. 아닙니다. 교회는 그가 처한 현재 상태를 진심으로 공감해주고, 스스로 일어나는데 도움이 되도록 곁에서 사랑의 언어로 다독여주고, 또한 회복되어 스스로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줄 줄 아는 위로자가 되어야 합니다.

 

마지막 세번째 care 대상자는 힘이 없는 자들입니다. 초신자들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성도들은 붙들어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붙들어주다의 원래 뜻은 꼭 붙어있다입니다. 교회는 신앙이 걸음마 단계인 성도들이 성숙해질 때까지 엄마가 아기에게 하듯 한눈 팔지 말고 지켜보며 care 해야 한다는 겁니다.

자료들을 보면, 초대 교회들은 실제로 이렇게 초신자들을 care 했습니다. 성숙한 성도 한 사람이 초신자 곁에 붙어서 한 몸처럼 행동했습니다. 성경 공부에 함께 참석하고, 예배 때 곁에서 함께 드리고, 평소에도 자주 만나 신앙 상담을 해주고, 삶에서 어려움을 겪으면 함께 기도하며 힘을 줍니다. 이렇게 care하는 중에 이젠 홀로 신앙 생활 수 있겠다고 판단이 되면, 그때 교회 리더들에게 알리고 침례를 준비합니다.

수평 이동이 많아 초신자를 보기 드문 이 시대, 건강한 교회는 온 힘을 다해 전도하고 그 결과 주님께 나온 초신자들을 잘 양육할 수 있는 엄마 신앙인들로 가득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