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커리커처

고난 주간 네째 날: 수난의 시작

채우미 2023. 4. 7. 00:11

 

아프리카 선교에 헌신한 Albert Schweitzer는 바흐가 작곡한 곡들을 깊이 사랑했습니다. 곡들에 담긴 깊은 영성 때문이었습니다. 슈바이처 박사는 바흐의 음악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바흐에게 음악이란 예배의 행위이다. 그 결과 우리는 그의 음악을 통해, 깊이 드리는 기도가 그렇듯이, 하나님과의 만남을 체험하게 된다.” 슈바이처는 바흐의 삶과 음악을 깊이 연구해서, 30살 되던 해에 800여 페이지에 달하는 “J. S. Bach”라는 책을 출간하게 됩니다. 슈바이처가 바흐를 얼마나 존경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슈바이처는 고국에서 선교 보고를 하던 중 이런 말을 합니다. “바흐의 음악에는 사람의 영혼을 깨우는 영적인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음악을 아프리카 원주민들에게 들려주지 못해 참 안타깝습니다.” 이 말을 전해들은 바흐 협회는 고온다습한 아프리카 환경에도 잘 견딜 수 있는 피아노를 특별 제작해서 슈바이처가 선교하고 있던 랑바르네로 보냅니다. 피아노를 받은 슈바이처는 매일 아침 교회 문을 열어놓고 바흐를 연주했습니다. 바흐의 음악을 깊이 사랑한 슈바이처는 마태의 수난곡을 5의 복음서라고 부를 정도로 극찬합니다.

 

오늘은 마태의 수난곡 중 수난의 시작에 해당하는 말씀을 함께 묵상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수난은 당신의 제자들과 백성들의 등 돌림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가롯 유다의 배신을 견뎌 내셔야 했습니다. 유다는 12 제자 중의 한 사람으로 부름 받을 정도로 믿음이 뛰어났고, 예수님을 따르는 공동체의 재정을 맡을 정도로 똑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잡으러 온 무리의 선봉에 서 있는 겁니다. 그러니 주님은 마음이 아주 아프셨을 겁니다.

 

다음은 대제사장들을 포함한 공회원들의 포악한 행위를 견뎌 내셔야 했습니다. 유대인들의 최고 의결 기관인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들은 소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뛰어나다고 인정받은 영적 리더들입니다. 그들은 성전에서 드리는 제사를 인도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그 리더들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기 위해, 십자가 자리로 내몰 구실을 찾겠다고, 예수님을 잡아와 심문을 하고 있는 겁니다. 당신의 백성들로부터 이런 모진 대우를 받으시는 주님의 마음은 정말 아프셨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베드로의 부인을 견뎌 내셔야 했습니다. 베드로는 그야말로 주님의 수제자였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도, 야고보, 요한과 함께 베드로를 데리고 가실 정도로 아끼고 사랑한 제자였습니다. “오늘 밤 너희들이 다 나를 버리고 도망할 거라는 주님 말씀에 죽기까지 주님을 따르겠다고 선언한 제자였습니다. 그런 제자가 심문장의 싸늘한 분위기에 압도당해, “예수를 아느냐는 질문에 강하게 모른다고 부인하며 점점 더 주님으로부터 멀어지는 모습을 보셔야 했습니다. 이때 주님께서 체험했을 마음의 고통은 태산과 같았을 겁니다.

 

이처럼 주님의 수난은 마음의 고통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공격을 당하고 배신을 당하는 것만큼 큰 고통도 없습니다. 욥을 시험해도 좋다는 하나님을 허락을 받고, 사단이 준비한 마지막 카운터 블로는 바로 친구들의 몰이해와 공격이었습니다. 재산과 자녀들, 그리고 건강을 잃었을 때도 하나님의 찬양하던 욥은 친구들의 공격 앞에서는 자신의 변호만 계속합니다. 주님께선 그 큰 고통을 우리를 위해 끝까지 견디셨습니다. 흠 없는 화목 제물이 되어,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완전히 구원하기 위해 끝까지 견디신 겁니다. 주님의 헤아릴 수 없는 사랑에 감사할 뿐입니다.

 

우린 여기서 주님의 제자들과 하나님의 백성들이 주님께 고통을 주는 존재로 전락한 이유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놀랍게도 공통점은 하나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믿지 않았다는 겁니다.” 3년이나 예수님과 동행했지만,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가르침, 천국 복음을 제대로 듣지 못했습니다. 십자가 사건을 통해 주님께서 이루실 구원을 이해하지 못하고 믿지 못한 겁니다. 그래서 연약해 보이는 주님께 실망하고 돌아선 겁니다. 유대의 리더들도 가룟 유다와 똑 같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계속 선포하셨지만 믿지 못한 겁니다. 베드로도 도망가서 몸을 피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주님 잡히신 자리에 오면 예수님을 3번이나 부인하게 될 거라고 경계까지 하셨지만, 듣지 않았던 겁니다.

 

우리 두란노 식구들은 하나님 말씀을 듣고 행하는 복된 자들이 다 되길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 기도하며 말씀을 부지런히 읽고 묵상하는 자들이 다 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반석과 같은 하나님 말씀 위에 서서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이 다 되길 축원합니다.  

 

바흐는 수난곡 중 베드로를 통해 이렇게 고백합니다.

, 자비를 베푸소서 주여. 나의 주여, 통곡하는 저를 용서하소서. 내게 자비를 베푸소서. 심히 통곡하오니 눈물 보소서. 주여 마음 깊이 비통한 눈물 흘리는 저를 돌아 보소서. 주여, 자비 베푸소서. 주를 멀리 떠난 이제 돌아갑니다. 주님 고난 받으심으로 생명의 길을 찾았네. 지울 없는 죄가 주의 자비 힘입어 정결하게 씻겨지니 주여 감사합니다

 

시작된 수난 속에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교훈, “말씀을 믿고 따르라.”는 교훈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