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솔길 의자에서

낡은 노트 속

채우미 2014. 6. 16. 22:18




지하실에서 책들을 정리하다가 대학 노트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노트에 적힌 글과 갈피에 끼워놓은 메모들을 읽어보니 83년부터 86년 사이의 시간 틀 안에서 생산된 것들이더군요. '나는?'이라고 적어놓은 제목이 그 시대에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읽어보니 치기 어린 표현들이 상당하긴 하지만 순수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당시의 기억들으로 통하는 길이라는 생각에 틈나는대로 이곳에 하나 하나 옮겨볼까 합니다. (막상 작업을 하려니 부끄럽고 쑥스럽긴 하군요.)





오늘은 먼저 시 한 편...군 복무 기간 중 님(지금의 아내)을 그리워하며 쓴 것으로 보입니다. 노트를 들추자마자 첫 번 째로 발견한 메모입니다.







칠석날의 사랑 이야기


1


돌이켜보면 

아름답고 소중한 만남이었다

순수를 찾으려는 긴 순례의 방황이 

네 눈과 가슴 위에 머물렀음은 커다란 손길의 

예정된 축복이었다

이후 퍼올릴수록 맑은 물이 솟는 넌

내게 필연의 존재 의미였다


네 곁에 있으면 늘

황혼 무렵 교회 종소리를 들으며 시를

읽고 있는 기분이었다 평화가

흰 눈처럼 부서져내린 바닷가

외딴 바위에 기대어 서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환상에 젖어들곤 했다


너와 나누는 사랑은 

영원을 이어 흐를 생명 짙은 감동이다

순간을 머물다 떠나가는 

인생에게는 더 없이 귀한 그러한...


2


세상이 혼탁해질수록 우리

사랑은 더욱 빛나야한다

달 없이 까만 밤이면 별이 그 아름다움을 더하듯이

착한 마음들이 

광란의 그림자로 지상 한구석에서 외로이 떨 때

너와 난 서로의 

발밑을 비추는 소망의 등불이어야 한다


삶이 매몰스레 우리의 

발길을 외면할 때

사랑은 그 상처를 치유하는 따스한 손길이어야 한다

나의 고뇌를 위해 내미는 

네 흰 손수건에

두 영혼이 잠기울 눈물이 흐르리라

이젠 하나가 아닌 둘 임에서 오는 감동으로


사랑은 힘인 것

너와 나의 지친 숨결을 기대어

쉬일 수 있는 튼튼한

위안의 기둥인 것을...


3


아름다운 추억과 황금빛 

소망에 비해 너무

초라한 현실이 답답한 때문인가

가위 눌린 듯한 발걸음을 옮겨 새벽

하늘 앞에 선다

목마른 그리움과 더불어


......


직녀를 만나러 가는 바쁜 견우의 혼이런가

새벽 하늘에서 길게

꼬리를 끌며 떨어져가는 유성 하날 본다


85.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