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디옥 교회의 교훈 2
안디옥 교회 이야기를 묵상하면서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되는 아주 중요한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인’ 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 명칭이 안디옥 교인들에게 최초로 붙여졌다는 겁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방인들이 중심이 된 최초의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만약 교인들이 유대인이었다면, 안디옥 사람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을 겁니다. 이미 유대인들은 자기들과 사는 방식이 다르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기들과 똑같이 재물에 탐욕을 부리고, 우상을 섬기며, 신전의 창기들과 행음하기를 즐기던 사람들이 예수 믿고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삶이 180도 바뀐 겁니다. 자기들 기준으로 보면 영 바보같이 살아가는 겁니다. 그래서 붙여준 별명인 겁니다. 당시 안디옥 사람들의 속마음을 반영해서 ‘크리스찬’이라는 별명을 우리 말로 해석하면 “예수쟁이” 정도가 될 겁니다. ‘도대체 저 사람들이 믿는 예수가 누구길래 저렇게 별스럽게 사는 거야?’ 이런 식의 조소가 담겨 있는 겁니다.
교인들을 놀리기 위해 세상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 ‘크리스찬’이라는 별명은 시간이 지나면서, 세상과는 구별된 성도들의 거룩한 신분을 잘 표현하는 존귀한 명칭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성도란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 있고 또한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도는 세상의 원리와 흐름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을 내려놓고 주님 주신 소명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따라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크리스찬’이라는 명칭은 그야말로 안성맞춤인 겁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엔 ‘크리스찬’이라는 이 존귀한 명칭이 어떤 대접을 받고 있을까요? 2020년 기독교 윤리 실천 운동이라는 단체에서 ‘한국 교회의 사회적 신뢰도’라는 제목으로 실시한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중 몇 가지만 보면, 한국 교회를 신뢰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한 사람들은 32%에 불과하고, 부정적인 답을 한 사람들은 무려 64%나 되었습니다. 가장 신뢰하는 종교를 묻는 질문에는, 카톨릭이 30%로 제일 높았고, 다음이 불교로 26%, 기독교는 19%로 셋 중 제일 낮았습니다. 사회적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교회가 개선해야 할 점에 대해 물었을 때, 1위가 남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점, 2위가 정직하지 못한 점, 3위가 배타성, 4위가 물질주의/성공주의라고 답했습니다. 한국 교회는 ‘크리스찬’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전락해 있는 겁니다.
‘크리스찬’에 담긴 아름답고 존귀한 의미를 회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시편 16편에 그 답이 있습니다. 이 시편의 저자 다윗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신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아주 구체적으로 노래합니다. 그 내용을 보니 모든 성도가 자신의 삶으로 불러야 할 찬양인 겁니다. 내용을 정리하면, 아빠 하나님과 교제하며 절대 행복을 누리고, 한식구가 된 형제 자매들을 존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며, 하나님 보다 사랑하는 것들을 다 없애고 오직 하나님께만 예배 드리고, 삶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믿고 청지기의 정신으로 살며,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함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요동하지 않는 삶을 세우고, 구원받은 자에게 주신 부활, 천국, 영생의 약속을 믿고 이 세상의 것들에 욕심 부리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교회와 성도들이 ‘크리스찬’의 이름에 걸맞는 삶을 회복하는 일은 시급한 과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