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온 세상이 그를 따른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소명을 이루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던 날, 하나님께서 신비한 사건을 연출하십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장면이 그렇습니다. 이 장면을 하나님께서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 이미 예언해두신 겁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약 500년 전에 살았던 선지자 스가랴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예언하고 있는 겁니다. 참 신비합니다.
먼저 스가랴는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임하실 주님을 공의롭고 구원을 베푸실 분, 그리고 겸손한 분으로 묘사합니다. 예수님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또한 주님께서 예루살렘에서 하실 일을 화평을 이루고 그 화평을 이 땅의 모든 백성들에게 선포하는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이 예언도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주님은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후, 십자가 위에서 화목 제물이 되셨습니다. 이 십자가 사건을 통해 이루신 것이 바로 화평인 겁니다. 죄의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하심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평과 사람들 간의 화평을 이루신 겁니다. 전지하신 하나님께서 연출하신 사건은 이처럼 신비하기만 합니다.
또 하나의 신비한 장면이 연출됩니다. 바로 수많은 사람들이 종려 나무 가지를 흔들며 예수님께 큰 소리로 외치는 장면입니다. 큰 무리는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호산나, Save us! 우리를 구원해주세요” 하고 외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환영하는 이 장면이, 요한계시록의 한 장면과 오버랩 되는 겁니다. 계시록 7장을 보면 모든 나라 모든 민족에서 나온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흔들며 보좌와 어린 양 앞에 서서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 하고 외칩니다. 흰옷을 입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고 낙원에 들어간 성도들입니다. 주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이상을 통해 보여주신 장면입니다. 이 두 장면이 아주 비슷한 겁니다. 단 큰 무리가 외치는 메시지는 다릅니다. 예루살렘의 무리들은 주님께 자기들을 구원해달라고 외치고 있는데, 계시록의 낙원 속 무리들은 자기들을 구원해주셨다고 외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두 장면은 구원이라는 연결 고리로 단단히 묶여 있는 겁니다. 이 신비한 연출을 통해 하나님께선 독생자 예수를 통해 구원을 이루셨다고 온 땅에 선포하신 겁니다.
하나님의 시간을 초월한 신비한 연출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복음의 확고한 증인이 되라는 겁니다.
큰 무리가 예수님을 환영하는 모습을 보고, 예수님을 끝까지 배척하고, 예수님의 사역을 끝까지 방해하고, 예수님을 죽일 계획까지 세워 둔 바리새인들은 풀이 죽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쓸데없다. 보라 온 세상이 저를 좇는도다.” 이렇게 큰 무리가 모여 예수님을 환영하게 된 원인이 뭘까요? 공생애 중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과 특히 죽은 지 나흘이 지나 부패가 시작된 나사로를 살리신 장면을 본 사람들 때문입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확실하게 증거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더 큰 기적을 체험한 증인들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엔 “보라 온 세상이 예수를 좇는도다.” 하고 외치는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침묵하거나 오히려 세상을 닮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적과 같은 은혜를 체험한 성도들은 이제 일어나 복음을 증거하는 참제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증인들이 전진해가는 곳 마다, “보라 온 세상이 예수를 따른다.”는 외침이 들리는 시대를 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