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커리커처

셋째 날: 기도

채우미 2022. 4. 13. 23:30

 

요한복음은 다른 복음서와 달리 기도에 대한 주님의 교훈이 많지 않습니다. 마지막 만찬에서 주신 교훈이 전부입니다. 많지 않은 교훈이지만, 깊이 묵상하면 다른 복음서가 기록하고 있는 기도에 대한 교훈들을 거의 다 포함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읽고 묵상할 때, 우리는 먼저 예수님께서 무엇을 강조하고 계신 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본문 중에서 무엇을 구하든지 다 행하신다, 무엇을 구하든지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고, 너희는 받게 될 것이다라는 말씀에 눈과 마음이 끌리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만 믿고 구하다가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하고 불평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강조하신 부분을 놓쳐서 생긴 오해입니다.  

예수님께서 중요하다고 방점을 찍으신 내용은 바로, 본문에서 네 번이나 반복되고 있는 내 이름으로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구하는 것이 무엇이든 이루어 주신다고 약속해주신 겁니다. 기도를 끝낼 때 내 이름으로 기도했다고 말하면 된다는 뜻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라는 말씀의 뜻은 무엇일까요?

 

첫번째 뜻은 예수님과의 올바른 관계 안에서 기도하라는 겁니다. 어제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 하나님께 올 자가 없다는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희생을 통해 죄의 문제를 해결하심으로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열어놓으신 겁니다. 이사야서 591절과 2절 말씀처럼,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혀 있으면, 하나님께서 듣지도 않으시고 능력을 베풀지도 않으시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당신의 생명을 내주심으로 막혔던 길을 열어 주신 겁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믿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라는 겁니다. 그럴 때 기도 길도 열리는 겁니다. 두란노 식구들은 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시죠? 그렇다면, 우리는 다 첫번째 관문은 통과한 겁니다. 축하합니다.

 

두번째 뜻은 예수님을 믿는다면,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기도하라는 겁니다. 전 말씀을 준비하면서, 복음서가 기록하고 있는 기도에 대한 주님의 교훈을 다 찾아서 정리해보았습니다. 중복되는 내용들은 하나로 합쳐서 전체 내용을 정리해보니까, 크게 기도할 내용과 기도의 태도로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기도문 안에 기도에 대한 교훈 대부분이 담겨 있다는 사실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주기도문을 중심으로 기도에 대한 교훈을 정리하고, 주기도문이 다루지 못한 나머지 교훈들을 따로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미 여러 번 들은 내용들이라 간략하게 정리하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말씀을 듣는 가운데, 자신의 기도 생활을 점검하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주님은 기도할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로 시작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를 분명히 알고 믿고 기도하라는 겁니다. 지금 내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 온 우주에서 나를 가장 사랑하시는 아빠라는 사실을 믿으라는 겁니다. 아빠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생명을 우리를 위해 주실 정도로 무한하십니다. 이 엄청난 사실을 믿고 담대하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을 믿고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거룩하다는 뜻이 구별되다라는 건 다 아실 겁니다. 하나님께선 우리 피조물과 구별되는 성품들을 갖고 계십니다. 예를 들면 전지하심, 전능하심, 신실하심, 무소부재하심 등이 그렇습니다. 이런 성품들 때문에,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는 겁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을 믿고 기도할 때, 의심은 사라지는 겁니다. 주님 말씀 한 마디로 무화과 나무가 뿌리 채 마른 사건을 보고 놀라워하는 제자들에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의심하지 말고 구하는 것을 받을 줄로 믿고 기도하라. 그러면 이 산을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기도해도 이뤄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을 믿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구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뤄지도록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께서 임하셔서 하나님의 뜻 대로 통치하시는 곳을 말합니다. 따라서 이 기도는 두 개의 내용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인 겁니다. 나의 삶이, 나의 가정이, 그리고 교회와 일터를 포함해서 내가 속한 모든 공동체가 하나님의 나라가 되길 바라며 기도하라는 겁니다. 마태복음 6장에서도 주님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기도할 때마다 이 위대한 기도를 빼놓지 않고, 최우선으로 하는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염려하는 것과 기도하는 것은 다릅니다. 여기서 일용할 양식이란, 먹는 것뿐 아니라 일상 생활에 꼭 필요한 것들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이 기도를 통해서 중요한 사실을 잊지 않길 원하십니다. 먼저 이 땅은 우리가 영원히 거주할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겁니다. 그러니 욕심을 버리고 일용할 양식에 만족한 삶을 살라는 겁니다. 또한 우리라는 공동체를 잊지 말라는 겁니다. 일용할 양식은 나만 필요한 것이 아님을 알고, 형제/자매의 필요를 위해서 중보 기도하는 성도가 되라는 겁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하고 있는지 살펴보길 바랍니다.

 

공동체의 평화를 위해 나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는 기도를 하라고 하십니다. 용서 없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희생을 통해 이루신 하나됨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교회 생활을 하다 보면 섭섭한 일이 반드시 생깁니다. 부족한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를 통해 우리를 하나되게 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자신에게 상처 준 성도를 용서하는 기도를 드리라는 겁니다. 용서하지 못한 부분들은 두고두고 남아 기도의 걸림돌이 됩니다. 그러니 우리는 용서의 기도에 빠른 지혜로운 성도가 되길 바랍니다.  

 

악한 영의 세력이 주는 시험에 빠져 악을 행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주님께서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제자들에게 시험에 빠지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은 원이지만 육신이 약해 악한 영의 세력이 공격할 때 흔들리기 쉽기 때문입니다. 주님 만나는 순간까지 사단의 세력들과 끊임없이 영적 씨름을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이 기도를 꼭 드리길 바랍니다.

 

지금부터는 주기도문에 담기지 않은 교훈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주님은 외식하는 자처럼 기도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주님 당시 바리새인들의 기도가 그랬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단 둘이 나누는 깊고 친밀한 대화이고 교제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기도를 자신의 신앙을 남들에게 보여주고 증명하는 재료로 사용한 겁니다. 그런 기도는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십니다.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과의 깊고 친밀한 교제가 일어나는 진실한 기도를 드리기 바랍니다.     

 

또한 포기하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구하는 것을 받을 때까지, 찾고 있는 것을 찾을 때까지, 그리고 두드리는 문이 열릴 때까지 기도하라는 겁니다. 주님은 한 비유를 사용해서 강청의 기도를 설명하십니다. 억울한 일을 당한 과부가 자신의 억울함을 재판관에게 호소합니다. 재판장이 관심을 보이지 않아도, 과부는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재판장을 찾아갑니다. 결국 재판장이 포기하고 과부의 청을 들어줍니다. 이 과부처럼 하나님의 응답이 있을 때까지 포기하지 말고 기도하기 바랍니다.

 

끝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성도들에게 성부 하나님께선 성령을 주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성부 하나님과 똑같은 성품을 가진 성령님을 통해 우리의 기도를 이뤄 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못 미치면, 성령님은 더 좋고 완전한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바울이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3번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선 그 기도를 들어주는 대신 나의 능력은 너의 약함 속에서 온전해진다.”는 진리를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내가 약하다는 것을 알 때, 비로서 나를 내려놓을 수 있게 되고, 그때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제자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걸 깨닫게 하신 겁니다. 바울은 더 크고 좋은 것으로 응답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올려드렸습니다. 우리 두란노 식구들은 기도할 때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서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선물로 받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