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 디오스구로
몰타에는 먼저 도착해서 겨울을 나고 있는 알렉산드리아 배가 한 척 있었습니다. 유라굴로 광풍이 불기 전에 출발했지만, 더 이상 항해할 조건이 되지 않아 몰타에 정박해 있었던 것 같습니다. 3 개월이 지나 배가 출항해도 되는 봄이 되었을 때, 바울과 일행은 그 배를 타고 함께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로마까지 가는 길은 순탄했습니다.
몰타에서 떠나는 장면을 서술하고 있는 누가의 기록에서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누가는 항해 기간 동안 자기가 탄 배의 형상에 대해 일체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알렉산드리아 배의 앞부분에 새겨 넣은 장식을 묘사하고 있는 겁니다. 그 장식은 디오스구로라는 제우스 신의 쌍둥이 아들, 즉 카스트로와 폴룩스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이 쌍둥이를 항해의 수호신으로 섬겼습니다. 그래서 항해 중 배를 지켜 달라는 뜻으로 쌍둥이 신의 형상을 뱃머리에 새겨 넣은 겁니다. 누가가 뜬금없이 이 두 신을 언급한 이유가 뭘까요? 전 이 장면에서 누가의 블랙 유머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누가는 그 형상을 통해, 3개월 전 유라굴로 광풍에 의해 배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사건, 그 불편한 기억을 들춰내고 있는 겁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외치고 있는 겁니다.
“자, 너희들이 공들여 새겨 넣은 저 멋진 쌍둥이 신들을 보아라. 배가 그렇게 철저히 파선될 때까지 너희가 믿는 쌍둥이 신들이 한 일이 도대체 뭐냐? 그 광풍 속에서 우리와 너희의 생명을 지키고 구해주신 분이 누구냐? 너희들이 섬기는 쌍둥이 신들이냐? 아니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시냐?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 구해주신 걸 너희가 직접 경험하지 않았느냐? 그러니 너희들 마음에서 우상을 지워버리고,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으라.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인 예수님을 믿으라.”
쌍둥이 신을 언급하면서, 누가는 우상의 헛됨을 신랄하게 지적하고 복음을 아주 당당하게 선포하고 있는 겁니다.
로마인들이 믿던 신들만 우상이 아닙니다. 노란 종이에 빨갛게 쓴 것만이 부적이 아닙니다. 만약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몰래 가슴 한 켠에 심어 두고 의지하고 있다면, 그게 뭐든 다 우상인 겁니다. 아주 쉬운 예 몇 가지만 들어보면, 재물, 자기 자신, 세상 속 지위, 잘 나가는 자녀들, 많은 재물을 물려줄 수 있는 부모들…다 우상이 될 소지가 있는 것들입니다. 이런 우상들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왜곡하고 방해하고 멀어지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상은 우리 삶에서 철저히 뿌리 채 뽑아 버려야만 합니다.
사도행전 19장을 보면 바울의 3차 선교지였던 에베소에서 아주 감동적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에베소는 로마 제국 안에서도 가장 미신이 성행하던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생명을 걸고 전한 복음과 전심으로 가르친 하나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자기가 지금까지 의지해 왔던 마술책들을 가지고 나와 불살라 버린 겁니다. 그들이 태운 마술책의 가치는 은 오만, 150명의 성인이 일년을 꼬박 일해야 모을 수 있는 대단한 금액입니다. 그런데 그 엄청난 것들을 쓰레기 소각하듯이 태워버린 겁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고 난 후, 이 모든 것은 배설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아주 확실하게 깨닫게 된 겁니다.
우리도 우리 안에 우상은 없는지 중간중간 점검해야 합니다. 우상은 텃밭의 잡초처럼 끈질기게 우리의 마음 밭을 침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과 기도의 칼로 수시로 우상을 솎아내는 작업을 해야 하는 겁니다. 우리 모두 이 우상 제거 작업을 아주 철저하게 함으로, 그 결과 마음 밭에서 성령의 열매가 건강하고 풍성하게 자라는 모습을 보고 스스로도 기뻐하고, 하나님께도 영광을 올려드리는 복된 삶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