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주간 새벽 3
요19:26-27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
마가복음 3장을 보면, 어느날 예수님께서 사역을 하고 계신 장소에 마리아와 그 동생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들을 보고 무리가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보소서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이 밖에서 당신을 찾고 있습니다.”이때 예수님께서 이해하기 힘든 말씀을 하십니다. “누가 내 모친이고 동생들이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주님께서 요한복음 6장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자들은 다 예수님의 가족이 된다고 가르쳐주고 계신 겁니다.
마가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은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 보다 쉽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물었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좇았습니다.” 이어지는 말은 없지만, 그런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나요?” 하고 묻고 있는 겁니다. 주님은 이렇게 대답해주셨습니다. “나와 복음을 위해 재산과 가족들을 버린 자들은 오는 세상에서 영생을 받을 것이다. 또한 이 땅에서는 재물과 가족을 백 배나 받게 될 것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뿐 아니라, 이 땅에서는 믿는 모든 자들이 다 가족이 되기 때문에, 원래 소유했던 재물과 가족의 수가 100배, 아주 많아진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에서도 주님은 믿음의 성도들은 다 한 식구라고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음을 앞두고 계신 주님은 모친 마리아에게는 제자 요한이 이제부터 아들이라고 그리고, 제자 요한에게는 마리아가 그의 어머니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혈연적 관계가 없는 마리아와 요한을 식구로 묶어주신 겁니다. 이 장면을 통해 주님은 “주님 안에서 성도들은 다 한식구다.”라는 지금까지의 가르침에 마침표를 찍고 계신 겁니다. 십자가 사건을 통해, 수직적으로는 하나님과 성도들을 가족으로, 또한 성도들도 가족으로 묶어주신 겁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2장에서 주님께서 이루신 수평의 화목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화평이 되셔서,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을 허시고 우리를 하나로 만드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이제 하나님 가정의 식구들이 되었습니다.”
우리 두란노 믿음의 공동체에 속한 멤버들도 다 한 식구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가족과 비교할 때, 교회 가족은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가장 큰 특징은 우리 아버지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우리 교회 식구들은 어디 가서도 당당해야 합니다.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은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온 만물을 소유하시고 운영하시는 분, 그리고 전지전능하시고 완전하시고 신실하시고 자녀들을 무한히 사랑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난 이런 하나님의 자녀야 라고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하나의 특징은 교회 가족들의 관계는 영원하다는 겁니다. 육신적 가족의 관계는 이혼하거나, 죽으면 깨집니다. 하지만 주님을 통해서 세워진 가족 관계는 하나님 나라에 가서도 계속됩니다. 관계의 영원성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성도들은, 교회 식구들을 더 사랑하고 하나가 되기 위해 더 노력합니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로자는 자기와 같은 유색 인종들의 인권을 위해 오랫동안 노력했습니다. NAACP, National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Colored People, (우리말로 번역하면, 유색 인종 인권 증진을 위한 전국 연합회 정도가 될 겁니다.)에 가입해서 비서로 일했고, 또 그 단체를 통해서 흑인들의 선거 참여 운동과 청소년들의 인권을 대변하는 활동을 활발하게 펼쳤습니다. 로자는 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모든 믿는 사람들을 한 식구로 만들어주셨는데, 왜 현실은 그렇지 못한걸까? 그래서 로자는 성경 말씀을 믿고, 주님의 마음을 실현하기 위해 하루하루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을 다 마친 로자는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습니다. 1955년 12월 1일이었습니다. 그녀가 사는 몽고메리 시에서 운영하는 버스는 인종 차별이 심했습니다. 버스의 앞문과 앞좌석은 백인 전용이었고, 유색 인종들은 뒷문과 뒷좌석만 이용해야 했습니다. 그날도 로자는 뒷문으로 올라 유색 인종 전용 좌석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백인들이 많이 타서 백인 전용 좌석이 금방 다 차고말았습니다. 그러자 기사가 흑인들에게 백인들을 위해 좌석을 양보하라고 소리쳤습니다. 다 뒤로 이동했지만, 로자는 창가쪽으로 더 들어가 앉았습니다. 소리쳐도 꿈쩍하지 않자, 운전기사는 경찰을 불렀고, 로자는 그 자리에서 체포되고 말았습니다. 로자는 흑인 변호사들과 함께 소송을 하기로 마음을 정합니다. 이번이 미국 사회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인종 차별을 제거할 수 있는 기회라고 본 겁니다. 로자가 속한 NAACP는 몽고메리 시의 흑인 교회 목사들에게 부탁했습니다. 재판이 시작되는 12월 5일 하루 동안 흑인 모두가 버스 안 타기 운동에 동참할 수 있도록 교회에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흑인 대부분이 교회 식구였기 때문입니다. NAACP 회원들은 거리에서 “우리는 이유 있는 싸움을 하고 있는 중 입니다. Do not ride a bus today”라고 적힌 팜플렛을 나누어주었습니다. 12월 5일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거리가 걷는 사람들로 가득찬 겁니다. 어린 학생부터 연장자들까지 다 이 운동에 동참한 겁니다. 그리고 이 운동은 다음 해 11월 13일 대법원에서 “버스의 인종 차별적 운영은 위헌”이라는 결정이 날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몽고메리의 흑인 교회 가족들이 모두 로자와 함께 한 결과였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그날 버스에서 일어나지 않은 이유가 혹시 몸이 아프거나 피곤해서였는지를 묻는 질문에 로자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뇨 그날 전 육체적으로 전혀 피곤하지 않았습니다. 평소와 같은 컨디션이었습니다. 당시 내 나이 겨우 42 이었습니다. 그때 내가 정말로 피곤했던 건 계속해서 굴복하며 살아온 내 자신이었습니다.” 로자의 대답엔 이런 뜻이 담겨 있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런데도 그 멋진 자존감을 꺾어버리고 잘못된 제도 앞에 계속 무릎을 꿇어온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자리에서 일어나길 거부했던 겁니다.”
버스 안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당당하게 밝힌 로자 파크스의 영적 자존감과 예수님을 통해 한 가족이 된 교회 식구들의 일치된 협력 때문에 미국 사회는 주님 안에서 모든 인종이 한 식구라는 진리를 깨닫고 실천할 수 있게 된 겁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자존감을 가지고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삶을 삶아야 합니다. 또한 영원한 가족들과 사랑으로 똘똘 뭉쳐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실천하는 일에 전심을 다해야 합니다. 두란노 믿음의 공동체가 이런 가족으로 세워지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