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듣게 된 이름
헨리 나누엔이라는 크리스천 작가의 이름을 처음 듣게 된 것은 회사에 다닐 때였습니다. 목회의 부름을 받고 그 부름에 순종하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가 기도하며 사직서 낼 적절한 시기를 기다리고 있던 즈음이었습니다. 그때 수요일이면 점심 시간을 이용해 예배 드리던 기독교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800여명이 근무하고 있는 건물에서 고작 20명 남짓 모여 길어야 40여분 정도 드리는 작은 예배 모임이었지만 참석자 모두에게서 풍겨나는 주님을 향한 간절한 사모의 마음 때문에 참 은혜로왔던 기억이 납니다. 출세를 위한 경쟁이 치열한 장소 한복판에 주님께서 마련해놓으신 영적 오아시스임에 틀림없었습니다(“지금도 잘 모이고 있을까?” 가끔씩 소식이 궁금하곤 합니다). 그 모임 멤버 중 한 후배 사원으로부터 그의 이름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한 번은 그 후배와 함께 퇴근 버스를 탄 적이 있습니다. 근무하던 수출 부서는 늦게 퇴근하는 날이 많아서 회사에서 마련한 퇴근자용 버스를 타볼 기회가 많질 않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신앙이 같은 후배와 나란히 앉아 퇴근하게 되었으니 반갑더군요. 후배도 반가왔던지 버스가 출발해서 목적지에서 내릴 때까지 신나게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았습니다. 초반부는 전도 이야기로 채워졌습니다. 전도 폭발 훈련을 통해 잃은 영혼들에게 다가가 복음을 전한 이야기는 뜨거웠습니다. 후반부는 자신이 읽고 은혜 받은 책 이야기로 채워졌습니다. 이때 후배의 입에서 헨리 나누엔이라는 이름을 듣게 되었던 겁니다. 그 이름과 함께 듣게 된 책 제목이 ‘탕자의 귀향’이었습니다. 얼마나 책과 작가를 칭찬하든지…. 당장 그날 밤 동네 기독교 서점에 들러 그 책을 샀던 기억이 납니다.
후배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할만 했습니다. 1983년 프랑스에 있는 라르쉬 공동체(지체부자유자를 돕는 공동체)의 한 사무실에서 처음 본 후 기억에서 지울 수 없었던 램브란트의 그림 ‘탕자의 귀향.’ 3년 후 러시아 방문 길에 그 원작을 보관하고 있는 아르미타주 박물관에 일부러 들려 하루종일 그 그림 앞에서 묵상하며 건져낸 심오한 진리들. 그후 그 진리들을 글로 표현해 묶어놓은 책이 바로 ‘탕자의 귀향’ 입니다. 탕자의 자리에서 돌아오는 데 그쳐선 안되고 주님의 제자가 된 후엔 무조건적으로 베푸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닮아 베푸는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제를 사색적 언어로 표현해낸 책은 읽는 내내 깊은 감동을 선물해주었습니다. 받은 감동을 되도록이면 오래 누리려고 가장 눈에 잘 띄는 위치를 골라 서가에 꽂아두었다가…유학 중 교회에서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한 형제와 대화하던 중 이 책이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 그에게 건네주었습니다. 그후로도 이분의 책을 몇 권 더 사서 읽었는데 본격적으로 신학 공부를 시작한 후론 더 이상 책을 통해 교제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금요일 예배 후 교제하는 중 이분의 이름을 다시 들을 수 있었습니다. S 집사님이 이 분이 쓴 책들을 감명 깊게 읽었다고 말씀하시더라구요. 반가운 마음이 들어 기억을 더듬어가면서 책과 이분의 인생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그 오래전 느꼈던 감동이 다시 가슴으로 흘러들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책꽂이에서 잠자고 있던 헨리 나우엔의 책 몇 권을 꺼내어 들춰보기도 했습니다.
지난 주일 목장 예배까지 다 마친 후 집에 돌아왔을 때 아내가 가방을 뒤적이더니 봉투에 든 책 한 권을 꺼내 제게 내밀었습니다. 헨리 나우웬이 쓴 ‘CAN YOU DRINK THE CUP?’이라는 제목의 책이었습니다. “S 집사님이 당신에게 주신 책이예요.”
지금 틈틈이 하지만 열심히 이 책을 읽고 있습니다. 책 구석구석에 밴 짙은 향기를 음미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