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주간 새벽 2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두 강도 중 하나가 주님께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예수님,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생각해주소서.” 대단한 신앙 고백입니다. 강도는 하나님 나라가 있음을 분명히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를 당신의 것이라고 말함으로,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고 있는 겁니다. 강도의 신앙 고백을 들으신 주님께서, 오늘 묵상할 말씀을 주셨습니다. 강도는 절망의 자리에서 예수님께 신앙을 고백함으로, 주님과 함께 낙원에 들어가는 복을 누리게 된 겁니다.
오늘 말씀은 모든 인류를 향한 외침이기도 합니다. “이제 낙원으로 들어가는 길이 활짝 열렸다.” 창세기 3장은 비극의 장입니다. 하나님께서 먹으면 정녕 죽을 것이니 절대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과를 아담과 하와가 따먹고 만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선 아담과 하와를 에덴, 헬라말로는 파라다이스, 우리 말로는 낙원에서 추방하셨고, 에덴의 입구를 천사와 불칼을 동원하셔서 잠그셨습니다. 죄로 인한 인간의 비극이 시작된 겁니다. 그러나 이 비극의 이야기 안에도 하나님은 소망의 불씨를 피워두셨습니다. 사탄을 향해 저주하시면서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 여자의 후손은 마리아를 통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뜻합니다. 그 예수님께서 사탄을 제압하실 날이 올 것이라고 약속해주신 겁니다. 그리고 약속대로 오신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죄의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시고 에덴으로 들어가는 길을 열어놓으신 겁니다.
예수님 오시기 전까지, 인류에게 죽음은 절망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예수님만 믿으면 죽음은 낙원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되는 겁니다. 이 복된 소식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편지를 쓸 때 로마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 편지 1장 21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하다.” 원문 그대로 번역하면 “내게는 사는 것 그리스도 그리고 죽는 것 유익.” 입니다. 동사가 전혀 없는 이 문장은 해석이 난감해보이지만, 1장 전체의 내용을 알고 풀면 어렵지 않게 풀립니다. 그렇게 풀어보면, 바울에게 사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제자로서 그분의 뒤를 따르며 그분의 영광만을 위해 사는 겁니다. 그리고 죽는 것은 그리스도를 직접 만나게 될테니 절대의 유익이라는 겁니다. 23절에선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지금 생과 사 두 사이에 끼어 고민하고 있는데, 사실 이 땅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다.” 사는 것 보다 죽는 게 훨씬 더 좋다는 바울이 고백이 불신자들에게는 비현실적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지금 진심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왜? 바울은 이 땅을 떠나는 순간 주님께서 약속하신 낙원에 들어가 예수님과 함께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영원히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것을 확실히 믿기 때문입니다. 두란노 식구들도 자신이 천국을 소유한 백성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목민심서를 지은 다신 정약용은 교과서에 배워 많은 분들이 알고 있지만, 그의 형 정약종의 순교 이야기는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시카고에는 정하상 성당이 있는데, 정하상은 이 정약종의 둘째 아들입니다. 정약종은 젊은 시절 유교에 정진하다가 그 한계를 느끼고 도교에 심취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1786년 형 정약전의 전도로 기독교를 만나게 됩니다. 그후 정약종은 41살의 나이에 순교할 때까지 한 순간도 믿음의 길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1841년에 시작된 신유박해 때 잡혀 모진 고문을 당했지만, 정약종은 자신의 신앙을 굳게 지켰고 오히려 복음을 전했습니다. “기독교 교리는 대단히 공정하고 지극히 올바르며 아주 진실된 것이므로 이에 대한 믿음을 바꿀 수 없으며, 비록 형벌 아래 만 번을 죽더라도 조금도 뉘우칠 생각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도를 알지 못한다면 이는 천지의 죄인이며, 살아 있어도 죽은 것과 같습니다.” 결국 정약종은 1801년 4월에 죽임을 당했는데, 형장으로 가는 길에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담대하게 신앙을 선포했습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하나님을 위해 죽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오. 마지막 심판 때에 우리의 울음은 진정한 즐거움으로 변할 것이고, 당신들의 즐거운 웃음은 진정한 고통으로 변할 것이니, 당신들은 나의 말을 기억하시오." 죽음의 순간에도 하늘을 보고 누우며, “땅을 내려다보면서 죽는 것보다 하늘을 쳐다보며 죽는 것이 더 좋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정약종은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를 분명히 믿고 있었던 겁니다. 두란노 식구들도 자신이 천국을 소유한 백성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천국을 분명히 믿는 사람들의 신앙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바울도 그랬고, 순교한 정약종의 삶도 그랬습니다.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구원을 통해 하나님 나라 시민권을 거져 주신 하나님 은혜에 대한 감사 때문입니다.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하나님의 그 무한한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로 넘치는 성도들은 누구보다도 충성된 삶을 살아가는 겁니다. 우리 두란노 식구들의 삶이 그런 삶이 되길 축원합니다. 또한 낙원에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때 주님께 들려드리기 위해 아름다운 신앙 이야기를 최대한 많이 수집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두란노 식구들도 그날을 위해 신앙의 souvenir를 풍성하게 수집하는 삶이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