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커리커처

참예배자

채우미 2017. 8. 22. 04:18


(한 성도님의 성화)

예배는 신앙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예배 때마다 하나님을 체험하고 싶은 건 모든 예배자들의 소망입니다. 하지만 예배의 자리에서 모두가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드리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일 예배 때 신명기 23장 말씀을 통해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방해하는 요소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아주 중요한 주제라 다시 정리해보았습니다.   

첫번째 방해 요소는 우상입니다. 하나님께선 우상을 품고 예배의 자리에 나온 성도들을 결코 만나주시지 않습니다. 우상이란 예배자가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 모두를 뜻합니다. 예를 들어 입술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찬양을 부르고는 있는데, 마음은 세상에서 갖고온 염려로 가득한 성도가 있다면, 염려라는 우상을 품고 거짓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겁니다. 또한 자기 관할 구역의 학교가 잘 운영되고 있는지 살피러 온 장학사 같이 매의 눈으로 예배를 관찰만 하고 있다면, 판단이라는 우상을 품고 거짓 예배를 드리는 겁니다. 예배의 주인공은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따라서 예배 드리는 자들은 자신의 오감 전부를 하나님께 집중하고 오직 그분만을 경배해야 하는 겁니다. 따라서 하나님 외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면 그건 거짓 예배일 수밖에 없는 겁니다. 예배자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선 그런 거짓 예배를 절대 받지 않으십니다. 우상들을 깨끗이 치우고나면, 우리 영혼은 시편 42편에 등장하는 목마른 사슴을 닮게 됩니다. 목 마른 사슴 눈에는 물밖에 보이질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으로 갈증하는 영혼이 될 때 참예배자가 될 수 있는 겁니다.

두번째 방해 요소는 불편한 관계입니다. 주변의 형제와 자매들을 미워하고 시기하면서 예배에 참석해선 안 된다는 겁니다. 마태복음 5 23, 24절 말씀에서 예수님은 이런 교훈을 주십니다.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예배를 드리다가로 해석하면 됩니다.) 형제에게 원망들을만한 일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그 형제에게 가서 화목하고 돌아와 그후에 제물을 드려야 한다고 하십니다. 교회 안의 형제와 자매를 미워하고 시기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지 말라는 겁니다. 이런 마음으로는 하나님께 집중할 수 없고, 하나님께선 이처럼 알맹이 없는 공허한 예배를 받으실 수가 없는 겁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그들이 뿜어대는 차갑고 불편한 분위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도 참예배를 드리는데 방해를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금간 관계는 엎질러진 우유를 다시 담는 것처럼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신앙인들에겐 적용할 수 없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관계가 깨어진 상태로 그대로 있거나 더 심각한 상태로 악화되길 바라는 사탄의 속삭임일 뿐입니다. 하나님 안에선 모든 것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만약 지금도 불편한 관계를 그대로 안고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용기를 가지고 먼저 상대방에게 한 발 다가가시기 바랍니다. 관계가 회복되는 순간 예배도 회복됨을 믿고 담대한 결단을 내려야 하는 겁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한 백성들은 예배 때마다 빠지지 않고 참석합니다. 예배를 통해 나누는 하나님과의 교제는 숨이 막힐 정도로 황홀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에 깊이 빠진 연인들이 다음 만남을 목을 빼고 기다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다시 하나님과 만나기 위해 열일 다 제쳐두고 예배의 자리를 찾는 겁니다. 우리 모두 그런 참예배자가 되길 바랍니다.